[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각자 이해하는 고유의 방법이 있다. 사회적, 물리적 현상이나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 좀 심각하게는 인생이나 종교, 예술이나 사랑 같은 것들 또한 자기 나름의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그 이해는 필요에 의해 생긴다. 내게 현실로 와 닿지 않고 내 일상에 들어오지 않은 현상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할 필요를 느끼긴 어렵다. 우리가 뭔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할 때는 그것이 내 삶의 어떤 형태로든 침입했을 때이다. 그 형태가 뉴스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으며 새로운 공부나 우연히 마주친 사건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해하려는 나라 또한 우리와 어떤 형태로든 가깝거나 우리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 나라다. 단적인 예로 한 온라인 서점에 몇 개의 나라 이름을 넣어 검색해보면 모든 서적 및 음반을 통 털어 일본에 관한 콘텐츠가 제일 많고 그 뒤를 잇는 건 미국, 프랑스다. 개인적으론 미국 사람과 인연이 많아서 미국 사람과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영화는 내게 미국을 이해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 영화 중 하나다.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그야말로 기적 같은 실화


이 영화는 실화다. 2009년 1월 15일, 승객 155명을 태운 여객기가 3시 30분,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하여 노스캐롤라이나로 향했다. 이륙 2분 후, 비행기는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두 개의 엔진 모두 기능을 상실한다. 관제사들은 가까운 두 개의 공항으로 회항을 권한다. 하지만 기장은 회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한다. 이후 허드슨 강에서 근무하던 다양한 인력과 운행하던 선박들의 도움, 그리고 일사불란한 승무원들의 활약으로 승객 전원이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사건 뒤를 다룬다. 사실 이게 불과 몇 분 만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장편 영화로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감독은 사건 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쉽게 말해 사후 조사가 이어졌다. 사고에 대한 물리적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가 이어졌고 회항이 정말 불가능했는지, 강으로의 비상착륙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기장의 그 선택으로 인해 승객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 건 아닌지, 그 선택으로 인해 회사의 자산인 비행기를 잃게 된 건 아닌지를 꼼꼼히 따진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청문회도 열린다. 관련 전문가와 조사관들이 모두 참석하고 관련 노조는 물론이고 언론, 여기에 당연히 사건의 당사자도 참가하는 심각한 청문회가 열린다.

그러나 알다시피, 사건 초기, 아니 그 이후에도 설리와 승무원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영화 속 동료 기장의 대사에서도 나오듯이 뉴욕은 2001년 9.11 사건 이후 즐거운 뉴스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특히 비행기와 관련해서는 말이다. 그런데 두 개의 엔진을 동시에 잃은 여객기가 도심 하천인, 그러니까 빌딩과 수많은 다리가 놓여 있는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 했음에도 불구하고 2차 사고는커녕 큰 부상자도 없이 안전하게 착륙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좋은 뉴스, 반가운 뉴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기장과 승무원들은 각종 뉴스는 물론이고 유명한 토크 쇼에도 출연해서 어느 인기 스타 못지않은 환영과 환호를 받았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기장이 잠시 들른 바에선 술값도 받지 않으려 했다. 국민을 모처럼 흥분 시킨 기쁜 소식, 새로운 영웅의 탄생, 온 도시의 들뜸 속에서 사고 조사와 청문회가 기계처럼 진행됐다. 이래야만 했을까?

배우 톰행크스가 열연한 영화 속 주인공, 체슬리 설리 역. (사진=영화 스틸컷.)
배우 톰행크스가 열연한 영화 속 주인공, 체슬리 설리 역. (사진=영화 스틸컷.)

 

해야 할 조사는 해야만 한다


잠시 상상해보자. 우리나라의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가 한겨울 한강에 비상착륙했다. 승객들은 털끝하나 안 다쳤다. 뉴스에선 기적이 일어났다고 호들갑이고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은 어벤저스처럼 추앙받는다. 시민들도 뭐하나 기쁜 일 없는 요즘에 모처럼 좋은 뉴스라고 입을 모아 칭찬한다. 기장과 부기장은 <유퀴즈>에 출연해서 유재석과 조세호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 대통령도 이들을 불러 격려를 한다. 관련 기관에선 이들을 모델로 공익 캠페인도 제작하고 항공사, 특히 저가 항공사의 모기업이나 상위 브랜드의 항공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기업 PR에 나선다. 계열사인 보험사는 이들을 모델로 기용하고 자동차 회사는 든든한 신형 SUV 광고의 모델로 기장과 부기장을 기용한다.

자, 이제 상상을 끝내보자.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분위기에 눌리지 않고 해야 될 조사는 할 것이다. 물속에 빠진 엔진을 건져 올릴 것이고 비행기도 인양해서 면밀하게 조사를 할 것이다. 청문회도 할까? 관련 전문가 수십 명이 참석하고 관련 노조까지 참관하는, 이 영화와 같은 엄격하고 냉혹한 청문회가 열릴까? 물론 실제로는 이 정도로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조사관들을 범죄자를 추궁하는 검사처럼 묘사해서 주인공인 톰 행크스가 불편해했고 관련 인물들이 불만을 제기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청문회는 열렸다. 분명히 이런 절차는 진행 됐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 절차를 더 엄격하고 냉혹하게 묘사했을 뿐이다.

(사진=인스타그램 911remembrance)
(사진=인스타그램 911remembrance)

 

미국 보수의 정신


그럼 여기서 당연하게도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감독은 왜 그랬을까?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미국 보수의 진정한 화신, 미국 보수의 정신과 이데올로기를 가장 정확하고 담백하게 표현한다는 감독. 이 감독이 이 실화에서 두 기장의 영웅담이나 승객들의 사연, 승무원들의 눈부신 헌신, 허드슨 강에서 구조를 도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 그 사건의 현장과 빛나는 순간들을 공들여 묘사하는 대신 이 뒤의 일, 청문회와 조사의 묘사에 치중했던 이유는 뭘까? 그것도 심지어 더 냉혹하고 철저하게 보이도록 말이다.

미국인들은 같은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한다. 과거를 기억하여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를 발판삼아 견고한 미래를 준비한다.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진 자리에 그날을 기억하는 추모 공간(Memorial)과 박물관을 조성한 사람들이다. 뉴욕 한 복판, 그 비싼 땅에 말이다. 우리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비싼 땅에 아파트를 짓지 않고, 주상복합이나 업무용 빌딩을 짓지 않고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조성할 수 있을까? 도심 한복판에 하다못해 누구나 볼 수 있게 규모 있는 추모비라도 세울 수 있을까? 심정적으론 야멸차다. 영웅 탄생 뒤 벌어진 청문회는 인정머리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 좋은 사건이든 나쁜 사건이든, 영웅담이든 실패담이든 그 사건과 관련 인물에 대해 함께 생각한다. 이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본 받을 사람은 기리며, 하지 말아야 될 실수와 겪지 말아야 할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런 정신이 미국의 역사 만들기, 공동체의 역사 교육, 다인종 국가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 의식의 바탕 중 하나다. 아직도 대형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인재(人災)라는 말이 반복되곤 하는 우리가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봐야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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