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를 할 때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놀랍게도 11월이 되자마자 SNS에는 한 해 사업을 슬슬 마무리한다는 글이 뜬다. 올 한해를 돌아보는 글을 쓰는 사람도 종종 있다. 아마 12월에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감독과 함께 일하는 이들, 동종 업계 사람들은 명목상 망년회 비스름한 걸 할 뿐,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은 맞물려 돌아간다. 하나의 일이 12월 31일에 무 자르듯이 딱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12월 중순 쯤 첫 미팅을 시작한 일이 1월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판이 펼쳐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가 가도, 와도 심난하거나 설레지 않는다. 서해에서 한 해의 마지막 해를 보지도 않고 바다를 옆에 끼고 사는 부산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해맞이를 한 적도 없다. 차로 30분이면 간절곶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사는 감독도 마찬가지다.

(사진=이톡뉴스)
(사진=이톡뉴스)

그러나 이런 우리라고 아쉬운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 해를 보내며 시원섭섭하다는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새해 첫날 마음먹은 것들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루지 못한 목표와 목적, 소망이 늦은 오후의 그림자 같이 길고 짙은 후회를 드리운다.

그 후회의 원인이 어디 한두 개일까? 가장 큰 원인은 오늘의 결심을 내일이면 물 엎지르듯 훅 쏟아버린 뒤 언제 그런 결심을 했냐는 듯 훌훌 그 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곤 하는 한 없이 얄팍하고 가벼운 내 의지일 것이다. 물론 굳은 의지를 뒤흔드는 원인도 많다. 큰 회사를 다니고 있는 아내와 치열한 경쟁이 일상인 IT 회사에 다니는 처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워라밸”이라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인지 알 수 있다. 그거 찾다가는 승진은 고사하고 자기 자리보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사회에서, 조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수록 찾는 사람도 만나야 될 사람도 많다. 챙겨야 될 가족도 늘고 지인도 많아진다. 정초에 결심했던 일 중 이루지 못한 일이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 이러니, “그래, 그럴만했다. 자,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하는 분위기를 11월 달부터 내어도 되는 걸까? 어떤 건 지금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11월에 수영을 시작한 사람


11월에도 수영장에 등록해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11월 1일, 새로 등록한 사람이 나왔다. 누가 봐도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과 진도가 맞지 않아 작은 연습 풀에서 강사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혼자서 발차기를 하고 물에 뜨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부끄러울 만도 한데 그녀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일 꾸준히 나왔다. 그녀는 어쩌면 일 년 내내 미루고 미루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11월에서야 결심을 굳히고 수영장에 나왔는지 모른다. 기왕 이렇게 늦은 거, 다음 해로 넘겨도 되는 데 그녀는 애매한 11월에 결심을 굳혔는지도 모른다. 그 굳힌 도전의 의지를 1일부터 실천으로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

대체로 새 달의 첫 주엔 수영장의 사람이 는다. 그러다 마지막 주엔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그런데 11월 달엔 1일에도 사람이 적었다. 1일이 수요일이어서일 것이다. 11월도, 수요일도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기에 어정쩡한 달과 날이지 않나? 그런가? 매달 1일이 무슨 요일이었는지 달력을 들춰봤다. 1일이 월요일이었던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학교의 경우엔 새 학기의 시작을 월요일에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수영장은 아니다. 달이 바뀌면 시작이다.

서울 도심의 한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 강습을 받고 있는 여성들. (사진=연합뉴스)
서울 도심의 한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 강습을 받고 있는 여성들. (사진=연합뉴스)

그러니까 수영장을 등록하고 달이 바뀌어 1일이 됐는데 “월요일부터 나가지 뭐.”하고 뭉그적대면 며칠 치 강습비를 날리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매달 1일이 그 달의 첫 수업일이다보니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기초반에서 몇 달 허우적대던 사람이 어느 달 문득 중급반으로 가게 된다. 중급반에서 이제 좀 수영을 알만하면 강사가 고급반으로 보내버린다. 기초반에도 새로운 사람을 받아야 하고, 중급반에선 기초반을 흡수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제까지 기초반과 중급반이었던 사람들은 달이 바뀌면 변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는 그전에 이미 했었거나, 아직 못했다면 하면서 다잡아야 한다. 갑작스럽겠지만 별 수 없다.

수영장의 강습이 첫 주 월요일이 아니라 무조건 1일인 것처럼 뭔가를 시작하기에 어색한 요일은 없다. 당연히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어색한 달도 없다. 앞서 봤듯이 달의 첫날이 월요일인 경우는 거의 없고 월급날이 불타는 금요일인 경우도 거의 없다. 큰 회사를 다니는 아내의 월급날인 25일이 금요일인 경우는 8월, 딱 한 달 뿐이었다. 그러니 새로 시작하기로 했으면 1일부터 시작해야 하고, 금요일에 놀기로 했으면 잔고가 달랑거려도 이번 주 금요일에 놀아야 한다. 그리고 올 한 해 미처 시작하지 못해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11월이든, 12월이든 시작하면 된다. 어차피 새해가 되자마자 큰마음 먹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말이다.

시작하기에 딱 좋은 지금


다시 말하지만, 뭔가를 시작하기엔 어색한 날도, 달도, 계절도 없다.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계절을 새로운 도전의 지렛대 삼을 필요는 없다. 지난 해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올 해 그러지 못하여 내년엔 기필코 책을 좀 읽으리라 마음먹었다면 그냥 내일부터 서점에 가서 책 몇 권 사와서 읽기 시작하면 된다. 인생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다. 물론 뭔가를 시작하기에, 배우기에 적당한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때를 놓친 후에 그걸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1960년 서울특별시립수영장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1960년 서울특별시립수영장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수영장엔 예순이 넘어 수영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부산 송정 바다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가 서핑을 배우기도 한다. 처남은 20년 가까이 피던 담배를 마흔이 넘어 끊었고 아내는 삼십 대 중반에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해가 갈수록 늙을 일 밖에 없다. 몸은 쇠약해지고 정신의 총명함도 떨어진다. 가는 한 해도, 오는 새해도 심드렁하게 보내고 맞이하는 나도 이런 세월의 무게는 실감하고 있다. 그러니 뭔가 하려고 한다면 지금이 최적기다.

새해의 첫 날을 기다려 굳은 맘을 먹고 뭔가를 시작해도 꾸준히 한다는 보장도 없다. 정초에 헬스장이든 수영장에 등록한다고 해도 그 굳은 결심이 봄을 넘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그럴 때마다 “내가 뭐 그렇지.”하며 포기해버리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 그 뒤에 숨지 않았었나? 결심이 실천이 되고, 그 실천이 굳어져 일상이 되는 건 어렵다. 우리 수영장의 고급반의 등록 인원은 매달 꽉꽉 차지만 나오는 사람만 늘 나온다. 강사조차 불가사의하다고 할 정도다. 안 나오는 사람도 그렇게 꼬박꼬박 등록을 한다. 다음 달의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끊임없이 걸어야 한다. 이번 달엔 몇 번 못나갔지만 다음 달엔 꾸준히 나가리라 기대해야 한다. 11월에 많이 못 나갔으면 12월의 한파를 뚫고 나가면 된다. 1월에 몇 번 못 나갔으면 2월엔 좀 더 많이 나가면 된다. 날 풀리는 3월이 되면 더 많이 나가면 된다. 그렇게 꾸역꾸역 자신을 몰아가면 된다. 그러다보면 운동도, 독서도, 일상이 된다.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할 수도 있다. 그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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