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최강야구> 아닐까? 사실 이승엽씨가 감독을 할 때만해도 이 정도까지 인기가 있진 않았다. 이 인기는 김성근 감독님 부임 이후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가 뭘까? 한 때 야구를 열심히 봤지만 지금은 보지 않는 나 같은 중년의 사내와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여성들과 야구의 규칙도 잘 모르는 필자의 열두 살짜리 딸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야구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재미를 느끼는 이유가 뭘까? 야구 유튜브 채널인 <최강불펜>에 나온 안승호 기자가, 한국 시리즈 티켓보다 <최강야구> 직관 경기 티켓 구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야구팬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이유는 뭘까? 김성근 감독님과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들, 그리고 독립리그와 대학의 유망주 몇몇으로 구성된 이 특이한 팀의 경기에 왜 사람들은 관심을 갖는 걸까?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난 최근 겪은 일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 봤다.

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

 

정치가 직업인 사람들


정치에 관심도 없고 관련 뉴스도 안 보는데 지역의 정치인들이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종종 한다. 친구 신청하는 정치인들의 지역구가 여러 지역이지만 대체로 울산과 부산, 경남 지역의 정치인이다 보니 민감한 이슈를 사이에 둔 날선 대립이 손에 베일 듯이 다가온다. 이런 대립의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가을 무렵부터 자신의 지역구에서 피켓 시위를 한 사람이다. 이 정치인은 이 칼럼을 쓰게 된 동기를 제공했다. 내가 그 사람의 참모라면 당장 뛰어가서 말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직업인 사람이 피켓 시위를 하는 것이 어쩐지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운동권 선후배들은 그런 시위를 했다. 대자보를 써 붙였고 수직의 현수막으로 강의동을 뒤 덮었다. 필자보다 십몇 년 선배들은 버스에 타서 전단지를 흩뿌렸다. 그러던 선배들도 언론사에 들어가고 각자의 직업을 가진 뒤에는 관련 된 일로 뉴스를 타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상적인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적절한 시스템 안에서 효율적인 방법을 써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국민의 세금을 수입원으로 하지 않는 재야의 정치인이라면 어디서 뭘 하건 상관없다. 또, 다음 총선이나 다음 지방선거의 공천과 당선을 기대하는 정치인이 아니라면 어디서 뭘 하건 상관없다. 그러나 최소한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자신의 연봉이 나오는 정치인이라면 그 녹을 받는 동안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길에 나서서 피켓을 드는 대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피켓만 보고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일 년 내내 서로를 비방하는 현수막을 보면서도 계속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등하굣길에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로터리가 있기에 이 현수막의 전쟁을 보기 싫어도 지켜봐야 했다. 여당은 야당 대표를, 야당은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일 년 내내 걸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런 네거티브 한 말의 홍수를 겪다보면 약간의 피로감, 솔직히 말하면 환멸감을 느낀다. 정부 예산을 얼마 타 왔다고 자랑하는 현수막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추석 때 으레 걸리는 추석 인사 현수막 또한 편안하게 다가 왔다. 거기에까지 무슨 비방이나 조롱이 담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가부를 정하는 지난 4월 13일 여의도 국회 앞에 양곡법과 관련한 정당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가부를 정하는 지난 4월 13일 여의도 국회 앞에 양곡법과 관련한 정당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는 국회의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담지 않는다. 국정감사와 인사청문회, 기관 및 예산 심의 등에서 서로 마주보고 싸우는 장면만 골라 내보낸다. 법안을 만들어 상정하고 민원 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우리가 볼 수 없다고 맨 날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닐 텐데 길에서 마주치는 현수막의 내용은 서로를 공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저녁 뉴스 시간에 다루는 정치 뉴스의 내용 또한 주로 이런 내용들이다 보니 국민 입장에서 은근히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정치에 대한 실망이 <최강 야구>를 좋아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 건 아닐까?

야신의 일갈(一喝)


다들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던 선수들이다. 야수엔 박용택, 이대호, 이택근, 정성훈, 정근우, 투수엔 장원삼, 유희관, 송승준, 이대은. 프로야구 팬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들 중 한두 명 정도는 아는 라인업이다. 이들이 은퇴한 후 몇 년, 또는 몇 개월이 지나 합류한 프로그램이 <최강야구>다. 다들 과거의 실력을 믿고,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예능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연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있었을 그 가벼운 마음에 김성근 감독님의 죽비가 내려쳤다. “돈 받으면 프로다. 내가 못 하면 이 프로그램이 없어진다. 이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함께하는 스태프 2백 명의 일이 없어진다. 그 가족까지 생각하면 우리에게 5,6백 명의 생계가 달려 있다. 그걸 생각해라.”하고 말씀하셨다.

1982년 3월 28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전기리그 MBC청룡과 OB베어스 경기에서 OB 신경식선수가 홈런을친후 김성근 코치에 환영을 받고있다. (사진=연합뉴스)
1982년 3월 28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전기리그 MBC청룡과 OB베어스 경기에서 OB 신경식선수가 홈런을친후 김성근 코치에 환영을 받고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뿐인가. 어디 가서 감독을 하고 코치를 해도 부족함 없는 전설들의 타격 폼이 맘에 안 들면 손수 교정해주셨다. 수비에서 실수를 한 독립 구단의 선수와 대학 선수에게는 손수 펑고를 치면서 훈련을 시켜주셨다. 선수 경험이 없는 비선수 출신 투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폼을 교정하면서 선수로 만드셨다. <최강야구> 제작진은 경기와 함께 이 과정 또한 보여줬다. 방송 시간에 다 보여줄 수 없는 분량은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상세히 보여줬다. 더불어 함께하는 스태프들의 수고와 마음도 전해줬다. 프로야구 드래프트 날, 야구단 소속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호명 될 때마다 자기 일처럼 환호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가족들이 한 경기 한 경기, 투구 하나 하나, 타석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담아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짊어진 프로의 무게, 김성근 감독님이 짊어진 리더의 책임감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이러한 것들이 많은 팬들에게,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돈 받으면 프로라는 김성근 감독님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국민으로부터 돈을 받는 정치인에겐 몇 백 명이 아니라 몇 천 명, 더 나아가 온 국민의 생계와 미래가 달려 있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민생의 의미는 이렇게 무거운 것이다. 혹시라도 이 칼럼을 필자와 페이스북 친구인 지역의 그 정치인이 본다면 부탁하고 싶다. 야인으로 지내시는 동안 대통령을 향한 문구를 담은 그 피켓 시위는 그만하시라고, 당선이 되어 국민의 세금으로 연봉을 받으실 생각이라면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구체적인 방법을 더 많이 더 자주 생각하시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시다면 그런 시위를 할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끝으로, 김성근 감독이 젊은 선수들과 훈련을 하다 이런 말을 하셨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마라. 그것만큼 비겁한 것이 없다.”고. 국민의 삶이 팍팍해지면, 나라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라고 나서는 정치인이 보고 싶은 요즘이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월요일 밤만 되면 <최강야구>를 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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