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때문에 바쁜 사람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종종 했던 얘기지만 책은 안 팔린다고 하고 출판사도 창업하는 곳보다 망하는 곳이 더 많다고들 하는데 이상하게 내 주변엔 책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봄, 이직을 한 처남의 회사에선 매달 3만 원 정도 도서 구입비로 책정해놨다고 한다. 역사 분야 외에는 관심이 없는 처남이라 누이와 나, 조카에게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달에 한두 개 정도 말해주고 있다. 아내도 요즘 책 때문에 나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얼마 후 미국에 사는 처제를 보러 가는 데 처제가 언니 편으로 읽을 만 한 책을 몇 권 사오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한 것이다.

이런저런 책 목록을 보는 아내가 안쓰러워 물었다. 처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뭐고, 어떤 책을 원하는지를 말이다. 아내가 말하길 읽어보고 읽을 만한 책 몇 권을 사오라고 했단다. 이거야 말로 어려운 주문 아닌가? 네가 먹어보고 맛있는 걸로 사오라는 주문, 네가 입어보고 예뻐 보이는 걸로 사오라는 주문만큼 난해하지 않나? 아내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책 몇 권을 들춰보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책을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처제의 부탁을 들어주기 고군분투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요즘, 이 다큐멘터리까지 우연히 보게 돼서 독서에 관해 써보기로 했다.

(사진=필자 제공)
(사진=필자 제공)

책을 멀리하기 시작하는 나이


EBS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책맹 인류>다. 내가 본 것은 2부였다. 내용이 마침 초등학교 5학년의 독서를 다루고 있어서 유심히 봤다. 내용은 간단하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하나는 독서가 숙제처럼 되어버렸다는 것, 다른 하나는 보상 체계에 의해 독서를 한다는 것. 독서가 일종의 해야만 하는 숙제이자 이겨야만 하는 시합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독서가 즐거울 리 없다. 독서의 깊이 또한 있을 리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읽어야 한다면 누가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겠는가. 당연히 쉽고 얇은 책을 읽게 된다. 숙제로써 읽는다면 당연히 완독을 목표로 삼지 정독이나 숙독을 목표로 삼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형태의 독서는 책의 권수가 곧 실적이다 보니 책과 책의 연결, 책과 책의 누적을 바탕으로 하는 지식의 구축에는 실패한다. 아니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다큐멘터리에선 위와 같은 초등학교 5학년이 책을 읽지 않는 여러 이유와 함께 의미 있고 꾸준한 독서를 위해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약간의 암시도 줬다. 그런데 그 암시가 구체적으로 어찌하라는 행동의 명시는 아니어서 답답한 부모들도 있을 같았다. 그런 부모들에게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몰라, 우리 가족 최초로 공공도서관 회원증을 발급받아 활발히 도서관을 드나들고 있는, 현재 초등학교 5년인 딸이 있는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꾸준히 책을 읽게 하는 방법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이상한 아빠의 팁 몇 가지


헤매게 해라. 다큐멘터리에도 나왔지만 많은 부모들이 권장도서 목록을 들고 책을 사오고, 부모의 바람을 담은 책을 사들고 온다. 그런 책을 아이한테 내밀어 봐야 읽을 리 없다. 아니, 상식적으로, 중국집에 가서도 먹고 싶은 메뉴를 스스로 고르는 애들이 부모가 권해준 책을 읽을 리 있겠나? 아이가 도서관과 서점의 서가를 헤매게 해라. 필자는 딸이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자주 가는 동네의 중고 서점에 데리고 다녔다. 물론 미취학 아동일 때는 적절한 책을 권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읽고 싶은 책을 골라오라고 했다. 아빠는 여기에서 내가 읽을 만한 책을 고르고 있을 테니, 너는 네가 읽은 책을 세권만 골라 오라고 시킨 것이다. 잘 골라오면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말이다. 이 말은 들은 딸은 어린이와 초등 교육 코너의 여러 서가를 들락날락 거리며 세 권을 골라 왔다. 난 그 책들을 들고 저자와 번역가, 출판사, 책의 물리적 상태, 내용의 깊이 등, 다각도로 가늠한 뒤 한두 권을 고르고, 선택받지 못한 책은 제 자리에 다시 꽂아두고 다른 책을 몇 찾아오라고 시켰다. 이걸 반복했다. 이후 딸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서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끌리는 책을 찾아다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관련 분야의 서가에서 책을 찾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말이다. 덕분에 요즘에 난 딸과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보호자나 결제하는 역할 정도만 하고 있다.

국립세종도서관. (사진=연합뉴스)
국립세종도서관. (사진=연합뉴스)

뭐 하나에 미치게 놔둬라. 아이들의 관심사는 순식간에 바뀐다. 뽀로로가 최고였던 아이가 어느새 프리파라나 시크릿 쥬쥬에 빠졌고 열 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아예 만화를 보지도 않았다. 책도 마찬가지다. 3학년 때는 환경 관련 책을 열심히 읽더니 4학년 때부터는 판타지 소설을 곁들여 읽기 시작했다. 5학년 들어서는 사회 시간에 헌법을 배우더니 갑자기 헌법 관련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 변덕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꿈이 어제와 오늘 다른 것처럼 관심사가 바뀌는 것 당연하다. 정말 중요한 건 그 관심사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인터넷으로 간단히 검색해서 알 수도 있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알 수도 있다. 아이가 책을 통해 그 분야의 지식의 깊이를 갖추고자 한다면 당연히 부모로써는 환영해야한다. 다시 말하지만, 변덕은 당연하다. 관건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이다.

책을 다 읽지 못 했다고 책망하지 마라. 아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난이도를 조절해주지 않는다. 딸은 자기 스스로 수준에 맞는 책에서부터 조금 어려운 책, 아주 어려운 책을 골고루 빌리고, 얇은 책과 두꺼운 책을 섞어 빌린다. 자신이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신중히 가늠하고 빌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관심 분야의 서가에 가서 구미가 당기고 눈에 띄는 걸 가져오는 것이다. 당연히 어렵거나 두꺼워서 반납 전까지 읽지 못하는 책이 발생한다. 아이가 책을 빌리는 순간 감이 온다. 그러나 그때 왜 다 읽지도 못할 책을 뭐 하러 빌렸냐고 잔소리 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서관에 처음 가서 빌린 책을 아이가 다 읽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할 때, 도서관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빌렸다가 다 못 읽고 반납하길 반복하면서 자신의 독서 수준을 가늠하고 그 취향을 알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해준 것이다. 덕분에 딸은 가벼운 마음으로 끌리는 책을 빌리게 됐다. 생각해 보자. 한 번 빌릴 때마다 다섯 권, 이주 안에 다 읽고 반납해야 한다. 어른도 만만치 않다. 아이한테 다 읽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난 그 중에 두세 권만 읽어도 다행이라고 본다.

먼저 읽어라. 내가 아이에게 여가시간에 가장 많이 보여주는 모습은 맥주를 마시는 모습, 스포츠를 보는 모습, 그리고 책을 읽는 모습이다. 사실 이것뿐이다. 요즘엔 아예 책을 읽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새로 단장한 베란다 구석에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거기서 책을 읽는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아이가 TV를 볼 때도 있다. 그래도 그냥 놔둔다. 그럴 땐 베란다와 거실 사이의 중문을 닫는다. 조금 있으면 지도 눈치가 있으니 TV를 끄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숙제를 하든가 책을 읽든가 한다.

마지막으로, 좀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독서는 그저 한갓 취미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줘라. 부모 스스로 “심심한데 책이나 읽어볼까?”하는 마음으로, 그런 기분으로 가볍게 몇 장 들춰봐라. 일상적으로 책을 읽는 부모가 독서가 일상인 자녀를 만들지 않을까? 아무 책이나 상관없다. 뭐라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작정하고 책상이나 테이블에 앉아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책을 읽지 마라. 무슨 엄청난 과업인 것처럼 말이다. 난 종종 맥주를 마시면서, 앞서 말한 캠핑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곤 한다. “책을 읽는 것이 뭐 그렇게 심각한 일이냐, 그냥 심심하면 맥주 한 잔 하면서 들추는 것이 책이다.” 이런 메시지를 아이에게 보내고 있다. 덕분에 아이도 심심하고 한가하면 책이나 좀 읽어볼까, 하는 자세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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