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고 완벽한 택배기사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김기현씨는 CJ대한통운의 택배 기사다. 내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에 왔으니 그가 이 지역을 담당한 세월은 어림잡아 십오 년이 넘을 것이다. 아내와 딸 덕에 우리 집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택배 기사 중에서 유독 그의 이름만 기억하는 건 당연하게도 그가 친절해서이다. 아니 친절하다기보다는 일을 완벽하게 잘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딸이 아기일 때, 많은 택배 기사들이 초인종을 누르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상당히 강렬하게 문을 두드리곤 했다. 딸이 잠들어야 몇 글자라도 쓸 수 있었던 당시 상황에선 깊은 분노를 부르는 행위였다. 몇몇 기사하고는 싸우기도 했다. 반면 김기현씨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사진=이톡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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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코로나 19 이후 시행 된 비대면 배송을 핑계로 많은 택배회사들이 초인종 한 번 안 누르고 말없이 택배만 문 앞에 놓고 가곤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는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는다. 그러다 아무 소리가 안 들리면 택배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사진을 찍고 문자를 보낸다. 1분 1초가 아까운 그에게 그 짧은 기다림조차 긴 시간임을 알기에 1층의 공동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벨 소리가 들리면 인터폰 영상을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현관문을 열고 택배를 건네받는다. 종종 함께 일하는 아내-아내로 추정할 뿐 확실치는 않다-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 아내도 남편처럼 섬세하다. 워낙에 여기저기 사이트에서, 이것저것 주문하다보니 택배사와 기사를 고를 수는 없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그가 우리의 택배를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아내 또한 이 말에 동의했다.

그런 그를 한여름에 만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가 동네에 차를 세우고 이 골목 저 골목 뛰어다니는 걸 우연히 보게 되면, 내가 주문한 택배가 없어도 괜스레 미안해지는 것이다. 느닷없이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누른 후 커다란 박스를 들고 서 있는 그를 보면 더 미안해진다. 내가 주문한 적이 없는 택배가 대부분이기에 사건처럼 그는 거기 서 있곤 한다. 얼른 나가서 짐을 받아들면 그는 이내 돌아서 간다. 마음 같아선 시원한 물이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그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 작은 캔 음료라도 사 놨다가 줘야지 생각만하다가 여름이 지나가버리고 만다.

여름에 고생하는 우리의 이웃들


얼마 전 폭우가 쏟아지던 주말이었다. 아내는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좀 그렇다면서 집에서 밥을 해먹자고 했다. 물론 우리가 주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라이더들이 비를 피해 쉴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니, 오히려 대목이라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자식이나 식구가 라이더라면 내보내지 않았을 날씨에 그 라이더들에게 내 저녁 한 끼를 배달시킨다는 건, 뭔가 비윤리적인 감각을 줬다. 그날 우린 냉장고와 식료품 창고를 뒤져서 남아 있는 가지와 여러 재료로 대충 볶음 같은 걸 해서 먹었다.

(사진=이코노미톡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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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라이더들이 폭우와 싸워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작년 이맘 때, 뉴스에선 배달 라이더들이 직면한 기후 변화의 고통에 대해 다뤘었다. 그 뉴스에선 기상청의 자료를 바탕으로 과거와 요즘의 강수량을 비교했다. 2천년을 기준으로 이전 20년(1981년~2000년)과 이후 20년(2000년~2021년)간 전국 기상관측소의 폭우 일수를 비교해 본 것이다. 시간당 50mm 이상 폭우일수는 282일에서 425일로 늘었고,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는 22일에서 44일로, 2배 급증했다. 라이더들은 이런 폭우에 젖은 도심을 바퀴 대부분이 잠긴 상태로 배달을 했다. 배달 시간에 지각을 하거나 나타나지 않는 노쇼를 하면 라이더의 등급이 강등되기 때문이다.

이 뉴스가 나오기 1년 전, 그러니까 2021년 9월 2일, 미국 뉴욕에 허리케인 아이다가 상륙했었다. 지하철과 도로가 물에 잠겼다. 뉴욕 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시민들에게 밖에 나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 날, 트위터에는 허리케인을 무릅쓰고 도심을 질주하며 음식 배달을 하는 배달 노동자들의 영상이 지속적으로 올라 왔다. 당연히 그 영상엔 비판의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뉴욕시 하원의원인 코르테즈 의원이었다. 그녀는 "뉴욕 전체가 홍수로 위험한 상황입니다. 시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발 배달 주문을 하지 말아 주세요. 취약 계층을 위험에 내몰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위험하다면 그들에게도 위험합니다. 음식 창고를 탈탈 털어 먹거나 이웃에 도움을 청하세요."라고 간청했다.

폭우와 태풍만 위험한가. 8월 내내 행정안전부와 부산 시에선 폭염경보 문자를 보냈다. 이 시기, 뉴스에선 폭염에 고생하는 스카우트들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내 눈엔 오히려 폭염에도 타지 않기 위해 온 몸을 꽁꽁 가리고 다니는 김기현씨를 비롯한 수많은 택배 기사와 배달 라이더들이 들어 왔고, 다른 뉴스들에 시선이 갔다. 폭우 뒤에 찾아 온 폭염으로 채소 농가들은 땅을 갈아엎었고 축산 농가들은 수천만 원을 들여 설치한 에어컨을 수백만 원의 전기세를 감당하면서도 연신 틀어댔다. 젖소농가의 우유 생산량은 떨어졌고 돼지들은 누워서 꼼짝하지 않았으며 닭들의 폐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때문인지 채소 값이 다시 오른다는 뉴스가 이어졌고 덩달아 식료품, 외식 가격이 오른다는 뉴스도 나왔다. 우리 집 옆의 김치 삼겹살 전문점 입구에는 “상추 수급이 어려워 리필을 못해드리니 널리 양해를 구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내 이웃에게 닥친 재난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난 환경주의자도 아니고 지구 온난화나 기상이변, 이상 기후에도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내가 알던 상식과 지금의 세상이 보여주는 현상이 어긋난다면, 그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쯤은 안다. 해수면 상승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를 대신할 새로운 수도를 물색 중이라고 한다. 남해안에선 태평양에서나 볼 수 있던 거대 상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동해에선 명태와 오징어 대신 참치가 잡힌 지 오래 됐다. 지금쯤이라면 평균 기온이 18도 정도, 그러니까 우리의 이른 봄날의 낮 기온 정도 되어야 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온도는 현재 30도를 웃돈다. 칠레의 일부 지역은 40도를 넘었고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과 칠레 중북부 지역의 기온은 1979~2000년의 평균 기온보다 9℃ 이상 높으며, 파라과이와 브라질 남부 일부 지역은 과거 평균 기온보다 6℃ 이상 높다.

이게 왜 이상한지 묻는 사람에겐, 올 해 열린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경기 장면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대기 선수와 감독은 패딩 점퍼를 입고 있다. 그곳은 남반부, 그러니까 우리와 다르게 겨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염원하는 한겨울일 때, 그들은 뜨거운 해변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산타클로스를 만난다. 이게 정상이다. 이게 정상적인 지구고, 이런 서로 다른 풍경은 지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더울 때 저쪽도 덥고, 우리가 추울 때 저쪽도 춥다면 세상에, 그리고 지구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문제가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인지는 기상학자, 지질학자, 해양학자, 환경전문가들이 찾아낼 것이다. 아니 찾아낸 답들은 이미 우리가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니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건 우리가 알고 있던 정상적인 지구, 우리의 상식대로 돌아가던 지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저자 전우익. (사진=연합뉴스)
저자 전우익. (사진=연합뉴스)

아내는 종종, 이런 기상이변 뉴스를 보면서 “아이고 지구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는 날 동안 행복하게 잘 삽시다.”하고 너스레를 떨곤 한다. 그러나 혼자만 잘 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잘 살아지는 세상인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하고 전우익 선생님이 말하시지 않았던가? 그 책에서 선생님은 이리 말하셨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하고. 그렇다. 혼자만 잘 살 수도 없지만, 설령 가능하더라도 혼자만 잘 살면 재미없다. 택배기사도, 배달 라이더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한다. 그들에게도 돌아갈 가정이 있고 꿈꾸는 미래가 있다. 같이 행복하자. 그러니, 일단, 마누라하고 딸, 여름엔 좀 덜 주문하거나, 되도록 가벼운 걸 주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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