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티셔츠의 의미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10대와 20대를 속칭 기지촌에서 보낸 필자에겐 당시엔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들만의 문화가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기회만 되면 단체 티셔츠와 모자를 만들어 입고 쓰는 것이었다. 교회나 성당에서 새로운 봉사 단체를 만들어도, 부대 내에 새로운 부서가 꾸려져도, 누군가 근속 몇 십 년이 되어도, 자신들의 부대가 치룬 과거의 전투의 기념일이 되어도 만들어 입었다. 1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사이에 있는 수많은 기념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다보니 나 또한 아는 지인들에게 긴 팔, 반 팔 할 것 없이 많은 티셔츠를 얻어 입어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따로 반팔 티셔츠나 맨투맨 티를 사서 입은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왜 그렇게 단체 티셔츠와 모자에 애착을 갖고 있었던 걸까? 어느 날 이 영화를 보다가,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다가 그 이유를 깨닫게 됐다.

이 영화는 소방관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기존의 소방관과는 좀 다른 성격의 소방관이 주인공이다. 광활한 미국의 초원 지대와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산불이 났을 때, 그 화재의 현장에 비행기로 투입되어 불을 끄는 소방관, 일명 핫샷이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한 신참 소방관의 성장기와 지역 소방대의 핫샷으로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소방대와 신참 소방대원은 함께 성장하고 이후 소방대는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하여 공식적으로 국가차원의 핫샷이 된다. 이후 필자가 눈여겨 본 장면이 나온다. 모든 대원과 가족이 한데 모여 축하 파티를 하는 날, 대장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가족임을, 서로가 서로를 챙겨야 하는 식구임을 강조한다. 그 연설이 끝난 후 대장은 티셔츠를 나눠준다. 난 이 장면을 보면서 앞서 말한 단체 티셔츠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영화(Only the Brave, 2018)" 속 단체티셔츠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영화(Only the Brave, 2018)" 속 단체티셔츠

유니폼과 공동체 의식


미국은 역사가 짧은 다인종 국가다. 게다가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연방제 국가다. 그래서인지 애국심만큼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애착 또한 강하다. 내가 만난 미국인에겐 공통적으로 여러 차원의 내적 정체성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보스턴에 사는 아일랜드계 백인은 자신을 미국인이자 아이리쉬며 뿌리 깊은 동부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또 텍사스에 사는 멕시코 이민자에게는 미국인이면서 멕시칸이고 텍사스 사람이라는 정서가 있었다. 한 미국인의 내면엔 그를 규정하는 공동체의 뿌리가 최소한 서너 개 정도는 탑재되어 있는 것이다. 스포츠 이벤트 등을 통해 학교에서 형성되는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까지 합하면 미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은 이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단체 티셔츠와 단체 모자는 이런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소도구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깃발이자 유니폼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로 묶는 이러한 외적 상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유니폼, 제복에 대해선 더 그렇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엄청 자유분방한 나라 같고 권위에 도전적이며 공권력을 가볍게 여기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군인, 경찰, 소방관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직군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갖고 있다. 더 나아가 지역의 스포츠 팀과 지역 학교의 스포츠 팀의 유니폼에 대한 애착 또한 갖고 있다. 자신들이 만든 단체와 공동체, 지역 모임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에 대한 애향심과 더 나아가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형성한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밑에서 위로, 작은 공동체에서 국가 단위로 퍼져나가며 겹겹이 쌓여 형성된다. 미국 사회에서 제복근무자에 대한 존경과 대우가 남다른 건 이렇게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부터 차근차근 다져진 결속력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쌓일수록, 그 의식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유니폼을 입은 사람의 책임감의 무게 또한 커진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에 따라 큰 책임을 진 사람에 대한 예우 또한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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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근무자에 대한 존경


제복을 입은 사람은 국가 권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가장 큰 단위의 책임을 진 사람의 상징이다. 미국 국민들이 군인에게 “Thank you for service”라고 말하는 건 상투적이거나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말이다. AA 항공사에서 군인사전탑승서비스를 소재로 광고를 제작한 것도, 버드와이저가 파병 된 군인들이 귀국하여 공항에 들어설 때 대기 승객들이 박수를 쳐 주는 모습만으로 광고를 제작한 것도, 귀향한 군인이 가족과 만나는 장면을 따로 편집한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각종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퇴역 군인과 그 가족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하거나 호명하여 예우를 표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그리고 필자가 몇 년 전 샌안토니오에서 만난, 이제 막 수료를 끝낸 공군 병사와 식사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가족들이 “난 공군의 아빠.”, “난 공군의 동생.”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것도 제복근무자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마음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희생과 봉사에 대한 미국 국민의 감사한 마음과 존경심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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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만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돈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복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국가보훈부에선 이들 제복근무자에 대한 감사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제복을 입은 당신이 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입다. 대한민국을 담다.”라는 카피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꼭 필요한 캠페인이다. 왜 이제야 이런 캠페인을 하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다. 이 기회를 계기로 제복근무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예우하는 마음이 달라졌으면 한다. 얼마 전 개그맨 김대희 씨가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던 군인들의 밥값을 대신 내줘 화제가 됐다. 그는 2015년부터 국방TV의 <리얼 병영 톡! 행군기>를 9년째 진행하고 있다. 군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만큼 그들의 수고에 대해 더 깊이 알아 애착이 클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현장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아 그 수고가 피부로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거엔 <배달의 기수>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고 <전우>나 <3840유격대>같은 드라마도 있었다. 반공정신을 고취시키고 애국과 호국 정신을 함양한다는 목적 아래 제법 오래 방송했었다. 위에서 아래로 이데올로기를 내려 보내는 시기였다. 이제는 국민들 스스로 이런 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 제복근무자 감사 캠페인을 보면서 당연하다 공감해주고, 저런 캠페인 없이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음을 여러모로 표현해야 되는 시기다. 저출산 시대에 나라는 앞으로 누가 지킬 것이냐 하는 걱정이 뉴스의 행간을 떠돈다. 분명, 앞으로는 한 명의 제복근무자가 짊어져야할 책임의 무게가 더 커질 것이다. 커지는 책임의 무게만큼 그들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대우와 함께 국민의 응원 또한 더 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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