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봐도 좋은 영화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살다보면 어려운 질문을 만날 때가 있다. 짬뽕과 짜장면 중 뭐가 좋은지 묻는 질문은 내게 너무 쉽다. 내 평생 자장면을 내 돈 주고 먹은 적은 없으니까. 그러나 앞선 칼럼에도 말한 것 같은데 다음과 같은 질문은 어렵다. 이제 막 독서를 해보려고 하는데 적당한 책을 권해 달라는 질문은 연애를 하고 싶은데 괜찮은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것만큼 어려운, 그리고 무책임한 질문이다. 그 다음으로 어려운 질문은 기억에 남는, 좋은 영화를 하나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그 수많은 영화 중 한두 편을 어찌 골라 추천하라는 건지. 언제 어디서 어떤 재미를 위해 볼 건지 정도는 말해줘야 하지 않나? 그러나 이 질문의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평생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영화 다섯 개를 추천해 보라면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8)" 스틸컷.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8)" 스틸컷.

워낙 유명한 영화니 내용은 간단히 요약하고 넘어간다. 좋은 대학들이 즐비한 보스턴의 한 청년이 주인공이다. 가족도 없이 큰 집에서 혼자 산다. 직업은 쉽게 말해 잡부. 건설현장이든 청소 일이든 들어오는 대로, 소개 받는 대로 그때그때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의 유이한 낙은 오랜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놀고 술을 마시는 것, 그리고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학 강의동의 복도를 청소하다 수학과 학생들도 못 푸는 문제를 우연히 보게 되고, 이 청년은 집에 돌아가 그 문제를 풀어 버린다. 수학과 교수는 이 청년을 찾아내어 수학의 숲을 헤쳐 나가는 동반자로 삼기로 한다. 이를 위해 이 청년이 처한 법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 동기였던 친구에게 정신 상담을 받게 한다. 이 와중에 청년은 명문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상담은 상담대로 진행되고 수학의 숲을 향한 여정도 시작된다. 그리고 사랑 또한 깊어진다. 이제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풀어야하는 문제가 청년 앞에 기다리고 있다.

'어른' 되기 필수 문제


어른이 되기 위해, 첫 번째 풀어야 될 문제는 과거를 바로 보는 것이다. 아픈 과거든, 좋은 과거든 그건 지나간 것이다. 우린 다만 현재의 기억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과거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안 좋은 과거는 더 안 좋게 회상되고, 좋은 과거는 더 좋게 회상된다. 어떤 과거든 담담히 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보다 안 좋은 건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아예 보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오늘의 문제는 과거의 일, 상처,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들이 많다. 프로이트나 라캉의 정신 분석 이론을 공부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의 인격이나 특이한 성격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천재성을 감추고 허드렛일을 전전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주먹질이나 해대는 청년의 오늘을 만든 원인은 저 아무도 없는 빈 집, 그 빈집을 채웠을 그 청년의 과거와 그 과거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를 상담했던 심리학과 교수도 새 출발을 위해 사랑하는 아내와 추억과 아내의 죽음까지 담담히 기억 속에서 길어 올려 이야기해야만 했다. 추억의 유적과 유물을 정리하고 애도를 끝내야 했다. 두 남자 모두, 그렇게 과거를, 고통스럽지만 똑바로 보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두 번째 문제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하지 않다. 우정이란 익숙한 타자와의 소통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대체로 우정은 같은 공간, 같은 시대, 같은 성장 배경, 같은 경제 수준 속에서 맺어진다. 그 결과 우정엔 미지의 타자에 대한 해석의 두려움도, 수용의 용기도 필요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함께 살아온 환경을, 늘 보던 친구와 살아낼 뿐이다. 반면 사랑은 낯선 타자에 대한 수용이고 해석이다. 영화에서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다. 그 사랑의 지속을 위해 나도 타자에게 해석의 대상이 되어줘야 한다. 연인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듣고 싶은 과거를 말해줘야 한다. 그 해석의 상호 실행이 멈출 때, 즉 타자에게 내 과거를 숨기고 싶을 때, 거기서 우리의 사랑은 멈춘다. 들뢰즈가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우정은 관조와 대화를 양분삼아 자라날 수 있는 반면 사랑은 무언의 해석에서 태어나고 또 그것으로 양육된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 1월 18일 ~ 1995년 11월 4일). (사진=위키피디아, 저작=Chamrran)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 1월 18일 ~ 1995년 11월 4일). (사진=위키피디아, 저작=Chamrran)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기


과거의 숨김은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에게 상처 줬던 과거를 품고 있는 이 도시, 이 환경, 이 집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마치 상처 입은 맹수가 자신의 굴에서 웅크리고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 과거의 공간과 기억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청년도 그랬다. 자신의 상처를 핥으며 고통을 반추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한다. 청년의 친구는 이런 그에게 자신의 굴을 떠나야만 한다고 재촉한다. 이것이 마지막 문제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두 청년의 대사를 들어보자.

“20년 후에도 이 동네 살면서 나랑 일이나 하고 우리 집에 와서 비디오나 보고 그러면 널 죽여 버릴 거야. 농담 아냐. 정말이야. 넌 우리한테 없는 재능을 가졌어.”, 그러자 청년이 발끈하며 화를 낸다. “젠장, 다들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그래. 난 이 일이 좋아.”, 그러자 친구가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널 위해선 그러는 게 아니라 날 위해서야. 난 쉰이 되도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거야. 그건 상관없어. 하지만 넌, 넌 지금 당첨 될 복권을 깔고 앉고서 너무 겁이 나서 돈으로 못 바꾸는 꼴이야. 병신 같은 짓이지. 네게 있는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거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네가 우리랑 같이 20년이 더 썩는 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야. 시간 낭비고.”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8)" 스틸컷.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8)" 스틸컷.

마지막으로 친구는 청년에게 마지막 바람을 내보인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아무런 답이 없을 때야. 안녕이란 말도, 작별 인사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만은 행복할 거야.” 여기서 우린 진정한 우정, 또는 사랑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성장을 위해 떠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떠남을 긍정하는 것이다.

문제를 다 풀어 어른이 된 후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청년은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준 낡은 차를 몰고 다른 도시로 떠난 여자 친구를 향해 떠난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볼 때마다, 난 이후의 일을 상상한다. 이 다음이 늘 궁금하다.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먼 도시로 떠난 여자 친구를 향한 여정의 끝, 그 다음 이어지는 길이 궁금했다. 둘은 만났을까? 다시 관계를 이어갔을까? 청년은 자신의 재능에 맞는 직장을 구했을까? 둘은 결혼했을까? 그건 모른다. 청년은 이제 막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다. 자신에게 상처를 줬지만 웅크리고 있기에 딱 좋았던 그 낡은 과거를 벗어나 불확실한 세계로 나아갔다. 어쩌면 더 큰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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