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작년 이맘때다. 글쓰기에 대한 강연을 의뢰 받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30분 정도 강연을 한 후, 나보다 앞서 강연을 한 지역 신문사 사람과 나란히 앉아 청중으로부터 질문 몇 개를 받았다. 그 중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말해달라는 거였다.

이날 내가 말한 영화는 좀 생뚱맞게도 이 영화 <맨 온 파이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여기 정부 기관의 지시 아래 다양한 폭력과 살상을 실행했던 남자가 있다. 그는 그 폭력에 환멸을 느껴 은퇴하고 멕시코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선배를 찾아온다. 당시 멕시코시티는 유괴와 납치 후 몸값을 요구하는 것이 비즈니스화 되던 상황. 쓸 만한 보디가드 구하는 것이 정재계 유력한 인사들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때 마침 선배에게 좋은 보디가드를 구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오고, 선배는 후배에게 정착을 권유하며 초등학생 소녀의 보디가드를 해보라고 권한다. 술이 없이는 과거에 저지른 폭력과 살상의 죄책감을 떨쳐낼 수 없었던 그는 거절하지만 결국 일을 받아들이고 한 사업가의 딸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의 서사는 상투적으로 이어진다. 서먹서먹했던 보디가드와 의뢰인인 초등학생 딸은 서서히 친해지고 보디가드는 소녀와의 순수한 우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그러다 소녀가 납치되고 보디가드는 마지막 복수를 실행한다.

영화 "맨 온 파이어(Man On Fire, 2004)" 스틸컷.
영화 "맨 온 파이어(Man On Fire, 2004)" 스틸컷.

 

프로페셔널과 사적(私的)인 세계


이 영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프로페셔널 아닐까? 오죽하면 주인공인 크리시도 “이 놈도 저 놈도 다 자기를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한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물론 이들은 부인할 수 없는 프로페셔널이다. 범죄도 직업으로 볼 수 있다면 말이다. 납치와 유괴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타자와 그 생명은 비즈니스 도구다. 목적인 몸값만 주면 다시 돌려보내준다. 이들의 마인드는 어쩌면 전당포 주인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큰 차이가 있다. 전당포는 스스로 맡기는 거지만 납치와 유괴는 납치/유괴 된 사람도, 그 사람의 가족도 의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테이큰>의 인신매매범도 주인공에게 비슷한 항변을 한다. “사적인 감정은 없다. 이건 그냥 비즈니스일 뿐이다.”라고 말이다. 이때 주인공이 한마디 한다. 난 사적(私的)이라고.

우리 프로페셔널의 세계와 사적인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프로페셔널의 세계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세계, 그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받는 세계다. 더 나아가 더 잘해서 그 업계에서 오래한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받는 세계다. 그 결과, 결국 누군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 동안 누군가는 더 적게 일을 하고 더 적은 돈을 벌 수 밖에 없지만 그 현상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일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자신보다 일을 적게 할 수 밖에 없어서 적게 벌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그 어떤 악의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내가 살아남는 것이 우선될 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세계다.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는, 당연하게도 문 안이다. 가정과 가족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에게 배신당할 때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 속, 가장 사악한 악당은 납치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대장이 아니라 소녀의 아버지다. 자기 회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딸의 납치극을 자신의 변호사와 공모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행위는 문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였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패륜이라 부른다. 주인공이 남겨 놓은 총으로 그가 늘 기도드리던 성모상 앞에서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자살을 권하며 주인공이 그 총을 남겨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영화 스틸컷.
영화 스틸컷.

 

타인과 삶의 의미


그렇다면 우린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고용 된 보디가드였던 주인공 크리시는 연인도 가족도 아닌 한 소녀의 복수를 위해 왜 그렇게 폭력을 수행해야 했는지, 더 나아가 살아 있는 소녀를 엄마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는지를 말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다보면 이 냉혹한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이 사람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문 밖은 프로페셔널의 세계고, 그 세계에서 사람의 의미는 도구적이다.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선 사람은 조직 안에서 실용적이고 실무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그 사람의 가치는 화폐로 이어지고 시간이 더 지나면 사람의 존재는 화폐, 그 자체가 된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화폐를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다. 속물이 되고 싶지 않아도 속물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직업 보디가드인 주인공 크리시도 그의 능력을 돈과 바꿨다. 이 일을 맡기 전, 아니 그 직후에도 그는 삶을 저버리려 했다. 우리는 이걸 기억해야 한다. 크리시가 자신의 고용주인 소녀와의 관계 속에서 살 의욕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일차원적 이유는, 우선은, 그 일의 성격이 그가 이때까지 해왔던 일과 다른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수많은 폭력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였던 그가, 돌아보면 그저 악몽 같은 현장에서 명령 받은 일을 해야만 했던 그가 어린 소녀의 삶을 지켜주는 일에서 자신의 다른 가치, 생존의 가치, 자신이 가진 기술을 다른 방향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소녀가 보내는 순수한 믿음, 애정, 그리고 처음으로 보호라는 책무로부터 발생한 책임감, 바로 거기서 살 이유를 찾은 것이다.

또 다른 해답은 하나의 시퀀스에서 찾을 수 있다. 크리시가 소녀에게 수영 스타트를 가르쳐 준 장면이다. 소녀는 수영 실력은 좋았지만 출발을 알리는 총 소리에 움찔하면서 스타트가 늦었다. 그 움찔하는 법을 고치는 훈련을 한 것이다. 그 훈련을 하고 함께 간 수영 대회, 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수녀님이 크리시와 인사를 나눈다. 그 때, 크리시가 “부모님이 출장 가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수녀님은 “오늘은 당신이 보호자군요.”하고 답한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주제이고 크리시의 복수와 헌신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열쇠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가 그렇게 소녀에게 순수한 타자의 의미를 느끼게 된 다른 계기는 없는 걸까? 나와 타인이 우리가 되기 위해선 서로를 호명해야 한다. 그 호명을 소녀가 먼저 했다. 소녀는 크리시에게 애칭을 부여했고 선물을 줬으며 웃음을 줬다. 어쩌면 크리시는 자신이 몸담았던 그 프로페셔널한 세상에서 삶의 의미뿐만 아니라 이름도, 웃음도, 마음의 표현도 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말이다. 소녀는 그 모든 것을 크리시에게 선사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소녀는 크리시를 프로페셔널한 세계의 도구에서 다시 사람으로 불러들였다.

유다 타대오. (사진=위키피디아, 화가=안토니 반 다이크)
유다 타대오. (사진=위키피디아, 화가=안토니 반 다이크)

 

소녀의 선물은 성 유다의 메달이었다. 성 유다는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와 다른, 통상 유다 다대오로 불리는 이다. 가톨릭에선 실패한 자를 위한 성인,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자로 여겨진다. 크리시에게 소녀는 이 유다와 같은 존재였다. 프로페셔널하게는 크리시가 소녀를 지킨 것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소녀가 크리시의 삶을 구원한 것이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서로의 삶에 의미를 주고, 의미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서로를 구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프로페셔널한 세계에서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가 존재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찾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닌 이유다.

(말하기 어려운 고민 또는 우울감을 느끼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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