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이 확인되는 나이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필자의 세대를 포함한 그 앞 세대들에겐 일종의 통념이 있었다. “공부 머리가 늦게 트이는 애가 있다.”, “생각 없이 놀다가 고2때 정신 차려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갔다.”, “군대 갔다 와서 정신 차렸다.”와 같은 말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남보다 조금 늦게 공부를 해도, 공부하는 법을 조금 늦게 터득하고 그 습관을 조금 늦게 들여도 앞서 가는 애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느낀 바로는 이제 그런 시대는 꽤 오래전에 끝난 것 같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이전에도 언급한 것 같지만 필자의 아내의 친구 중엔 20년 차를 넘긴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다. 이 지역 업계(?)에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제법 유명한 선생님으로 선생님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애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던가, 아내가 이 친구를 만나 아이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한 점을 물어봤었다. 그때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아이들의 미래가 보인다고.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작 열 살, 미래를 가늠되기엔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 그런데 그 선생님은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이 향후 맞이할 미래가 감지된다는 것이었다. 고 2때 정신 차려서 대학 갔다는 전설, 군대 갔다 와서 재수해서 명문대 갔다는 전설을 수 없이 듣고 살아온 아저씨는 그 선생님의 의견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슬슬 인정하고 있다.

요즘 나오는 일타강사들의 방송이나 딸이 보는 입시 콘텐츠의 내용에 담긴 일관된 메시지 때문이다. 이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공부 방법이 없으면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공부가 힘들다. 최소한 중학교 때부터는 그런 습관을 들여야 하고 만약 그런 습관 없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으려 하면 그야말로 비싼 대가,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이톡뉴스)
(사진=이톡뉴스)

 

학원보단 '습관'


교육열이 서울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지근한 동네이지만 이런 동네의 아이들도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예체능 학원을 끊고 공부 관련 학원으로 옮겨 간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니던 미술 학원에서 애가 언제 공부 학원으로 옮길 건지 걱정하는 전화가 왔을 정도였다. 우리는 아이가 5학년이 될 때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 학원에 보내면서 수학 학습지 하나 시키는 걸로 버텼다. 그러다 결국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영어 학원에 보내줬다.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고맙게도 아이가 그럭저럭 성적을 유지해 줬기 때문이다. 난 그 비결을 타고난 성실함과 약간의 좋은 머리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서야 딸의 비결을 알았다.

얼마 전 일요일, 딸은 공부를 한다며 내 서재를 겸하고 있는 공부방에 들어갔다. 주말이면 서재의 컴퓨터 앞에서 빈둥거리며 유튜브를 보거나 그러다 지치면 마지못해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것이 낙인 필자는 거실로 쫓겨났다. 그렇게 거실에서 두어 시간 있었나? 슬슬 공부가 끝나가지 않을까 싶었고, 언제나 그렇듯 주말의 TV 또한 볼 것이 없어서 공부방에 들어가 아이 옆에서 책을 보기로 마음먹고 들어갔다. 딸과 등지고 앉아 책을 펼쳤다. 십분 쯤 읽으니 잠이 왔다. 슬쩍 돌아보니 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체면이 있지, 30분은 버티자고 마음먹었다. 다시 뒤를 봤다. 역시 미동도 하지 않고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결국 한 시간을 버티다 나왔다. 아내에게 딸의 무거운 엉덩이의 무서움을 털어 놓은후,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딸은 나왔다. 그때 알았다. 아기였을 때부터 진득이 오래 앉아서 꼼지락거리며 뭔가 하는 걸 좋아했던 딸의 장점이 공부 습관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워런 버핏의 조언


일찍부터 버릇을 들여야 하는 건 비단 공부 습관만이 아니다. 얼마 전 우연히 Yahoo Finance와 한 워런 버핏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진행자는 진정한 성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워런 버핏의 대답 중 내 이목을 끈 내용은 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운동의 중요성을 자동차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함께 상상해 보자. 당신이 타고 싶은 자동차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고르기만 하면 무조건 가질 수 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그 자동차를 평생 타야만 한다. 자, 그렇게 고른 차가 도착했다. 당신은 자동차를 어떻게 할까? 남은 인생동안 타야 할 자동차다. 애지중지 다룰 것이다.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칠 것이다. 급가속, 급정거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오래 세워 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린 맘만 먹으면 여러 대의 자동차를 바꿔 탈 수 있다. 진짜 하나뿐인 것은 신체다. 단 하나뿐인 신체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당연히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한다. 무리하지도 않아야 하고 나태하게 쉬어서도 안 된다. 언제나 몸이 최상의 상태가 유지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왜냐고? 몸은 단 하나뿐이니까. 그런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는 쉰이 넘어야 관리를 좀 하겠다고 나선다. 워런 버핏은 그땐 이미 녹슨 뒤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말한다. 최고의 투자는 자신에게 하는 투자라고. 그건 아무도 뺏어갈 수 없다고.

오래된 의자. (사진=이톡뉴스DB)
오래된 의자. (사진=이톡뉴스DB)

 

내가 다니는 수영장의 열한 시 클래스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는 거의 없다. 외모만 봐서는 두 명 정도지 않을까? 샤워장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을 보면 열 시 클래스에는 대여섯 명 있는 것 같다. 반면 여자는 많다. 최소한 열 명 이상으로 보인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십 년 이상 이 수영장을 다닌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의 수영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늘 제자리걸음이다. 실력을 향상하려는 의지가 적다. 워런 버핏이 말한 것처럼 오십이 넘어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어서일 것이다.

일찍 시작해서 좋은 건 십 대 시절에 이미 그 재능의 꽃을 피우는 예체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공부든 운동이든 좋은 습관일수록 일찍 들이는 것이 좋다. 당연한 이야기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좋은 습관 없이 어른이 되어버리면 언젠가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그 습관을 인위적으로, 급작스레 익히고 들여야만 한다. 당연하게도 그 습관이 인생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은 습관을 들이는 데 미룰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일찍 익힌 후 평생 반복하여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나이가 들어 그 버릇을 들이는 건 중년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는 것만큼, 마흔이 넘어 담배나 술을 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쉰이라는 나이가 멀어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워런 버핏이 이 쉰이라는 나이를 콕 집어 말한 건 어쩌면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 나이를 아주 멀게 느끼는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쉰이라는 나이가 생각보다 빨리 당도하는 나이임을 주지 시키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생각보다 쉰이라는 나이는 빨리 왔다. 아무도 뺏어가지 못할 내 자산 증식을 위해 지금 해야 될 걸 하자. 쉰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면 더욱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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