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 겸손, 소박, 털털의 성공이야기

‘변방인’의 ‘정치적 장수’
메르켈의 4선연임
총명, 겸손, 소박, 털털의 성공이야기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메르켈 공식사이트>

총명, 겸손, 소박, 검소, 온유, 털털하고 뼛속까지 서민 주부 스타일... 1954년 7월 17일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해 평소 내가 가졌던 이미지다. 독일의 유서 깊은 명문 라이프치히대학교 물리학 박사 출신인 메르켈 총리가 지난 9월 24일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을 네 번째 연달아 맡는 영광을 안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최장수 총리로 독일인들은 이미 그를 ‘영원한 총리’(eternal chancellor)로 부른다. 2001년 최연소,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이래 메르켈은 ‘독일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엄마(무티) 같은 지도자’로 그 역량을 재차 확인 받은 셈이다. 선거를 통해 16년 동안이나 ‘최고 권력자’로 일한다는 건 민주주의 국가 정치지도자들 중에선 보기 드문 일일 것이다.    

변방인의 ‘정치적 장수’ 비결 있었다

[박미정(朴美靜) 칼럼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News,이톡뉴스)] 별 일 없으면 2021년까지 독일 총리직을 맡게 될 이 여성총리는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난 ‘동독 출신’에 이혼경력이 있는 그야말로 ‘변방인’(marginal man)이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장수’를 누리는 최고 권력자가 된 데는 남다른 이유가 필시 있을 것이다. 
독일 언론들은 메르켈의 4선 연임 성공에 대해 ‘독일인들은 메르켈의 권력 있다고 티내지 않고 돈을 아끼는 슈바벤 지역 주부스타일의 검소함을 좋아한다’면서 ‘메르켈은 권력을 가진 것을 특별하지 않은 일로 바꿔 놓았다. 권력을 과시하지 않지만, 힘을 가졌다’고 호평하고 있다. 메르켈의 실생활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수수한 패션 스타일’을 보면 대강 그녀가 어떻게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20년 된 블라우스를 잘 손질해 계속 입고 있거나 휴가지에 갈 때 같은 옷을 입는 것도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7월 말 남편과 이탈리아 북부 산악 휴양지 쥐트티롤 줄덴에서 휴가를 보냈다. 9년째 같은 장소다. 머문 호텔도 늘 같다. 올해 휴가지에서 5년째 붉은색 체크 남방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검소함과 털털함이 공존하는 메르켈에게서 독일국민들은 안도감과 위로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한 신문은 식료품점 딸(대처)과 목사의 딸(메르켈)로 태어난 두 여성이 이공계 과학도 출신이라는 점, 우파 여성 정치인으로 남성 중심의 정계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했던 대처 전 총리와 달리 메르켈 총리는 ‘따뜻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유연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케이스다.
또 대처 전 총리는 유럽 통합에 강력히 반대했으나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의 조정자 역할을 맡아 왔다. 독일인들은 메르켈의 차분하고 소탈한 ‘엄마 리더십’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굳이 변화의 필요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같은 ‘평민의 딸들’로 태어났지만 대처 총리는 ‘깐깐한 권력자의 모습’이 분명한데 비해 메르켈은 ‘넉넉한 풍채’에서 느껴지듯 서민적 면모가 진하게 풍긴다. 

이웃집 아줌마의 편안한 느낌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메르켈 공식사이트>

‘국민이 이웃집 아줌마 같은 메르켈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야말로 메르켈 성공요인의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 지도자건 국민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유능한 정치인’의 첫째 조건이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지도자의 존재가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의 경지야말로 ‘최고 지도자’가 갖춰야할 최고 덕목이라고 본다. 메르켈은 ‘엄마(Mutti) 리더십’으로 불릴 만큼 권위보다는 따뜻함과 설득력을 우선시하고, 포퓰리즘에 몰두하기 보다는 원칙을 앞세워 묵묵히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동베를린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일하던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메르켈은 당시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끌던 기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듬해 장관으로 발탁됐고 1998년 기민당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콜 총리가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메르켈은 ‘정치적 양부(養父)’인 콜의 정계 은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2000년 4월 첫 여성 당수가 됐다. 자기를 키워준 사람을 앞장서 ‘내몰았다’는 점에선 메르켈이 ‘배은망덕’한 정치꾼으로 몰릴 염려도 있지만 이런 ‘위기’를 메르켈은 특유의 결단력으로 넘어섰다.

메르켈의 이런 정치역정을 보면 그녀에겐 역시 ‘운’이 따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제아무리 재간이 넘치는 사람도 이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의 문으로 입성하기 어려운 게 인생이다. 물론 그 운의 기초에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그녀의 총명한 현실 판단력과 결단력이 받침돌 역할을 해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운이 따라줬기에 ‘유럽 최고 강국’ 독일의 4선 연임 총리가 된 것이다. 메르켈은 엘리트 남성 중심의 독일 정치 무대에서 ‘여성’과 ‘동독 출신’이라는 장벽을 동시에 뛰어넘었다. 그 장벽을 뛰어넘는다는 게 말이 쉽지 예삿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메르켈 총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엔 ‘시대의 흐름’이나 그녀의 타고난 운과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와 뛰어난 통찰력과 인내심 같은 것이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작용했다고 본다.  

학창 시절엔 동독 공산당에서 선전·선동을 담당한 열성 당원이었다. 그러다 1989년 동독의 민주화 운동 단체 ‘민주변혁’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독일의 저명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메르켈에게 ‘메르키아벨리’(Merkiavelli)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메르켈과 현실주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합친 말이다. 그만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센스’가 뛰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박근혜와 메르켈 닮은점, 다른점

항간에선 ‘메르켈과 박근혜’의 공통점을 말하면서 두 여성지도자가 닮았다는 소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견강부회’라고 할 수 있겠다. 54년생과 52년생인 두 여성지도자는 ‘여성’이라는 공통점과 물리학도와 전자공학도라는 이공계 전공자라는 점을 빼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은 ‘대통령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대통령직에 오른 케이스인데 비해 ‘가난한 목사의 딸’인 메르켈은 ‘완전 자수성가’한 지도자로서 누구보다도 ‘서민’ 그 자체의 삶을 뼛속까지 체험하면서 살아왔다는 점에서 ‘비교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판단력 면에서 두 여성은 천양지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저렇게 영어의 몸으로 본인은 물론 국내외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박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 한 대학교수로부터 생방송 TV토론에서 판단력이 ‘바텀’(bottom)이라는 직설적 비판을 들었을 정도로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말을 했던 교수는 그녀가 당선된 이후 ‘괘씸죄’ 탓이었는지 대학에서 쫓겨났다.

메르켈은 최측근으로 불리던 아네테 샤반 교육부 장관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리자 즉각 경질함으로써 그의 단호한 면을 보여줬다. 이에 비해 박 전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이나 지금 감방에 있는 최모 여인 등을 쳐내지 못한 ‘인사실패’, 즉 ‘측근’에 대한 지나친 ‘관용’으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아무튼 ‘메르켈과 박근혜’는 같은 50년대생으로 대학에서 이공계통을 전공한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비교할 수 없는, 각자의 특색이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수성가한 서민출신’ 지도자와 ‘공주출신’의 차이라고나 해야 할까. 어쨌든 추석명절을 독방에서 쓸쓸히 보냈을 박 전 대통령으로선 4선 연임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가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2차대전 후 3번째 4선 성공기록

이번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의 ‘정치 이방인’으로서 콘라트 아데나워, 헬무트 콜에 이어 독일에서 2차 대전 이후 4선에 성공한 세 번째 총리가 됐다. 특히 한때는 개인 지지율이 60%를 웃돌아 통일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꼽혀온 건 주목할 만하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11년 6개월 재임)를 제치고 유럽 최장수 여성 지도자로 등극하는 영광도 안았다. 메르켈은 1977년 같은 물리학도인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으나 1982년 이혼했다. 메르켈은 첫 남편의 성(姓)이다. 첫 남편의 성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게 좀 특이하다. 1998년 현 남편인 화학과 교수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다. 자녀는 없다. 하지만 메르켈은 “해외 출장을 앞두고도 남편 아침 식사는 꼭 챙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바쁜 독일 총리가 ‘남편 수발’에도 정성을 들인다는 점에서 ‘엄마 리더십’의 일면이 느껴진다. 

▲ 朴美靜 편집위원(박미정 스카이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최근 메르켈 총리는 독일 어린이 기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인생에서 가장 괜찮았던 순간이 언제인지’를 묻는 어린이들의 질문에 “남편(요아힘 자우어)을 알게 됐을 때”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최고 권력자’ 답지 않은 진솔한 답변태도에서 남다른 부부애가 느껴진다. ‘외조남편’의 위치를 묵묵히 지켜왔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 남편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양자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게자리 태생’의 가정적인 자상한 면모까지도 아울러 갖춘 이 겸손하고 소박하고 검소한 최고지도자 덕분에 독일 국민은 정치적으로 편안함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북핵위협에 시달리며 일상을 보내야하는 한국인으로서 정치걱정 별로 안한다는 독일 국민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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