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도 책 읽기에 마음이 급하다

츤도쿠(tsundoku)는 책을 사서 쌓아 놓기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츤도쿠(tsundoku)는 책을 사서 쌓아 놓기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올 한 해 백 권 정도의 책을 읽고 독서록을 써야 한다. 자기 말로는 지금까지 76권을 읽었다고 한다. 물론 얇은 동화책이 대부분이지만 마음 급한 엄마가 사준 로알드 달의 아동 문학과 필자도 어린 시절에 읽었던 에리히 캐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도 끼여 있다. 독서의 장려를 넘어 강권하는 학교 덕에 책을 열심히 읽는데 그것도 모자라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독서 모임도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마음에 맞는 엄마들이 만든 모임이지만 말이다. 이 독서모임에 다녀온 어느 주말, 아내가 누구네 집 애가 이런 책을 읽는데 그 집이 책에 관심도 많고 요즘 초등 독서 트렌드를 잘 따라가니 우리 애도 그걸 읽혀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적 과학 동화라는 그 시리즈를 캡처를 해 보냈다. 다른 집 애가 읽는 책을 읽지 않으면 우리 애의 미래가 불안해질 것 같은 조바심이라도 있는 걸까? 무슨 고급 입시 정보라도 되는 양 다른 집 독서 정보를 수집해 아이에게 같은 책을 읽히려 하는 극성을 이런 조바심에 기인한 강박으로 밖에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마 츤도쿠도 이런 강박이 원인으로 작용한 현상일 것이다.

책에 대한 강박, 츤도쿠


츤도쿠는 “읽다.”라는 “도쿠(読)”와 “쌓다.”라는 의미의 “츠무”에서 파생 된 “측(積)”이 합쳐진 말이다. 말 그대로 책을 사서 쌓아 놓기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몇 몇 기사에 의하면 19세기 일본 문헌에도 보인다니 새로운 말은 아닌듯하다. 그러나 이제야 눈에 띈 거 보면 근래 들어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에서도 부쩍 회자되고 있는 모양이다. 영문으로 tsundoku라고 검색하면 관련 이미지들이 국경과 인종을 막론하고 뜨는 걸 보면 그 유행이 짐작 간다. 북호더(book hoarder)라는 말도 유사한 의미다. 직역하면 “책 저장 강박증자”정도 될 텐데, 이 역시 책을 사서 쌓아 두기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인지 도쿄 긴자의 모리오카 서점은 일주일에 단 한권의 책만, 심지어 한 달에 한 가지 책만 판다고 한다.

츤도쿠는 책벌레하고는 다르다. 책벌레는 그야말로 책 내부에 서식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책을 파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문학소년, 소녀하고도 다르다. 그들은 책에 감명 받아 글을 썼고 더 잘 쓰기 위해 책을 탐독하고 필사 했던 글쟁이들이었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소설 <뒤마 클럽>에 나오는 책 사냥꾼과 부유한 수집가들하고도 다르다. 이들은 세계에 몇 권 밖에 없는 희귀한 책을 찾아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이와 그렇게 찾아낸 책을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사들여 전시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이로 엮어진 동업자 무리다. 반면 츤도쿠는 유명한 인문사회과학서나 베스트셀러, 인지도 높은 책을 사들여 책등을 벽돌 삼아 만들어낸 성벽, 그 자체로 위로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린 이 저장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읽는 것보다 책을 수집하여 쌓아 놓는데 혈안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강박의 원인은?


책의 저장강박은 기존의 저장강박증과 다를 게 없을지 모르고 쇼핑중독을 닮은 현상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의사들의 말을 빌리면 저장강박은 가치 판단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의 손상, 과거로부터 연유한 상처로 인해 발생 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라고 한다. 쇼핑 중독 또한 모든 중독이 그렇듯 짧게 오는 쾌락을 연이어 추구하기 위한 반복적 행위이거나 자기애적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한다. 또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결핍의 기억으로 인해 현재의 것들을 축적하며 미래를 준비하려는 강박도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책 저장 강박의 원인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험난한 현재를 살고 있는 개인의 경험이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보험으로 책을 선택하게 했는지 모른다. 현실의 불안을 예쁘장한 책을 사는 순간의 쾌감으로 잊으려하는 책 쇼핑 중독일수도 있다. 뜯어보지도 않은 택배 박스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쾌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홈쇼핑 중독자처럼 츤도쿠도 진열 된 새 책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 자기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끊임없이 뭔가를 대비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형성 되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아마 그 강박이 경쟁적인 도서 구매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집단 강박에 의한 책의 성 쌓기는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독보적인 경쟁력 형성엔 크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차별화가 경쟁력의 하나의 포인트라면 모두 읽는 책을 나도 읽는 건 그 차별화 형성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남과 같기 위해서, 서로 닮기 위해서라면 구지 베스트셀러를 그러모을 필요는 없다. 우린 이미 유아기부터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있고, 그 교육 덕에 안팎으로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읽은 책으로 쌓아지는 인격성


벤야민과 아도르노 연구가 김진영은 그의 책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에서 “독서는 쓰여 지지 않은 것을 읽는 일이다.”라는 벤야민의 글을 인용하고 뒤이어 인격성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한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 그 사람 고유의 인격성이 되기 위해선 부가되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지적 성찰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인격성이란 “타고난 자연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단하고 정직한 지적 성찰로 구축되는 자기 인식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투적이지만 좋은 독서는 생각의 방향과 좋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쓰여 지지 않은 것을 읽는 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다른 질문을 갖고 있으면 서로 다른 답으로 해석할 것이고, 같은 질문을 갖고 있더라도 다른 책을 읽으면 서로 다른 답을 얻어 나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TV에서 전문가 인터뷰 영상을 볼 때, 그 배경이 연구실이나 서재일 경우 꽂혀 있는 책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를 전문가로 만든 책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책을 살피게 되는데, 그가 자신의 인격성을 만들기 위해 더듬어 거슬러 온 지적 성찰의 과정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자주 나오는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씨의 책장처럼 전공과 아무 상관없는 책들이 잔뜩 꽂혀 있는 책장을 반복해서 보다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고유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밑그림을 그려보게 된다.

결국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은 지적 성찰로 구축 된 자기 인격성이며 그로인해 탄생한 한 인간의 독보적인 지적 세계다. 그래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서재에 꽂힌 책으로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다른지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선 당연히 그 책은 읽었던 책이고 그 읽은 책들이 불러낸 책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 연이은 누적으로 인해, 김진영이 말한 자기 성찰의 구축이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안팎의 압박에 떠밀린 책 쌓기는 또 다른 초조함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설령 안도감을 얻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소유한 책을 나도 소유했다는데서 오는 안도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독서는 편식이 허락되는 유일한 양식일지 모른다. 그 읽은 책의 목록들이 그의 과거를 말해주고 앞으로 그가 나아갈 지도가 될 수 있고, 그 지도를 소유한 사람만이 남과 다른 미래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명함 한 장이나 자개가 잔뜩 박힌 명패가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결국 서가에 꽂힌 책과 도서관 대출 카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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