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검과 닮은 요즘 음악방송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딸이 크니까 음악 방송을 보게 된다. 방송 내내 남자 아이돌 그룹과 여자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이어진다. 나로서는 남녀 각각 한 팀이 회전문을 통해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이다. 딸은 이러쿵저러쿵 설명하지만 멤버를 클로즈 업 해도 앞에 나왔던 팀이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온 느낌이 든다. 중국의 변검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꼰대라거나 노인네라 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보이니 그렇게 보인다고 할 뿐이다. 노래도 내 귀에는 대동소이하게 들린다.

다들 나름의 음악 세계가 있다는 딸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결혼 준비를 할 때 웨딩드레스를 골라주던 기분이 든다. 흰 색 드레스 간의 차이를 찾아내서 골라줘야 하는 곤란함은, 겪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리라. 웨딩드레스는 웨딩드레스고, 턱시도는 턱시도며, 아이돌은 아이돌이다. 대중음악의 구분이 비교적 심플했던 시절, 송대관과 부활, 이문세와 시나위의 음악을 가려듣기 위해 그 음악을 해부해서 들을 필요도 없던 시절에 십 대를 보낸 사람 입장에서는 요즘 아이돌간의 음악 차이는 족발의 앞발과 뒷발의 맛 차이 정도다.

2008년 12월 2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넥스트(N.E.X.T)' 6집 쇼케이스에서 가수 신해철이 열창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08년 12월 2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넥스트(N.E.X.T)' 6집 쇼케이스에서 가수 신해철이 열창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


과거, 가요 프로그램의 단골이던 로커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장르와 세기의 경계를 넘어 활동했던 서태지는 행복한 결혼 생활 때문인지 활동이 뜸하다. 언제 들어도 전율인 <Lazenca, Save Us>를 남긴 마왕 신해철은 너무 일찍 가버렸다. 백두산의 기타리스트였고 영국에서도 그룹을 이끌었던 김도균 형님은 왕년의 스타들과 여행 다니며 밥 해먹는 예능을 하고 있다.

젊은 로커들은 홍대에서 밀려났고, 이 시국에 공연도 할 수 없어서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에겐 여전히 록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TV에 록 그룹이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는 록은 <데이 브레이크>나 <잔나비>의 밴드 음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혁오 밴드>의 그 얼마쯤은 현학적이면서도 시니컬하고 몽롱한 음악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내 번역기는 그런 말랑말랑한 음악을 록으로 번역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세련되고 모던한 지금의 록이라면 난 기꺼이 촌스러운 옛 록을 찾아 듣겠다. 듣는 순간 체온이 1도 정도는 올라가는, 베일 듯 날카로운 기타 소리와 천둥과 꽹과리, 또는 태평소의 울음 같은 보컬이 섞인 그런 록을 듣겠다. 시나위 1집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에서 나오는 임재범의 그 굵고 직선적인 목소리를, 브라이언 메이의 카랑카랑한 기타 솔로를, 레드 제플린의 <모비딕>에서 쏟아지는 존 보냄의 드럼 솔로를 듣겠다.

“너무 편향 된 거 아니냐.”, “록의 기준이 너무 꼰대다.”하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취향이란 건 원래 그렇게 이기적이어서 타인의 양해 따위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이건 패트릭 유잉과 샤킬 오닐을 두고 NBA 최고 센터가 누군지 싸우는 두 사람을 화해와 합의의 장으로 이끌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그 취향의 넓은 간극을 내 쪽으로 끌어당겨 좁히려는 시도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해에서 한자 이(理)는 “다스리다.”라는 뜻이 있는 것이다. 이해는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현상을 내 이성으로 바짝 끌어 당겨 개념화하는 것일 뿐이다. 이해는, 그래서, 때로는 권위적이고, 때로는 폭압적이다. 그러니 딸의 취향도, 내 취향도 이해 받아야 할 것도, 이해 받을 필요도 없는 문제다.

예술이 되기 위한 시간의 가치


우리 대중음악은 세련되어졌다. 세련되어졌다는 건 달리 말하면 다듬어졌다는 것이고 시류에 걸맞게 길들여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인의 귀에 맞춰졌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새로운 신인이 등장해도 신인 같지 않다.

사전을 보니 과거, 신인의 뜻에는 “새색시”, “새로 시집 온 여자”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새댁이라는 의미다. 어린 나이에 시집 온 여자가 남에 집 살림살이가 얼마나 낯설겠나? 새로 온 사람이니 그 적응의 시간과 내 집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을 당연시 했을 것이다. 그 시간의 자잘한 실수들은 신인이라는 말로 덮어졌을 테고, 가르침이 체화 되는 기회의 시간으로 허락 됐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신인들은 이 사전적 신인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 신인에겐 예전처럼 무대에서 성장해가는 과정이나 실력이 늘면서 한명의 뮤지션이나 예술인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새 가수들은 신인(新人)이라기보다는 신제품에 가깝지 않을까?

이론상으론 시장에 등장하는 신제품은 등장할 때 이미 완벽해야 한다. 등장의 결과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다. 지금 나오는 아이돌들도 이와 비슷한 운명이지 않을까? 성장의 시간, 변화의 시간, 개선의 시간, 성숙의 시간, 뮤지션으로 곰삭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이 겪어낸 연습생의 시간은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한 신제품을 만드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제품화” 됐고, 그 사이 그 원석 같은 개성은 그 세월 어디쯤에서 실종 됐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제품 규격에 맞는 원자재를 찾아내서 다듬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품의 시간은 금방 끝난다. 그 어떤 히트 상품이더라도 캐시 카우(Cash Cow)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아무 제품이나 코카 콜라나 새우깡이 되는 건 아니다.

예술의 기능과 가치


세계 시장으로 진군하는 그 세련된 K팝 상품 진열대에 상품성이 없는 음악의 자리는, 서서히 무르익어간 베테랑 뮤지션의 자리는 없는 걸까? 상품이 되지 못한 예술의 자리는 어디인걸까? 팔리지 않는 예술은 이 시국에 어디에서 생존하고 있을까? 문화의 다양성은 그것들의 다양한 시도 이전에 그 고유의 그러함을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잉태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양성을, 특히 예술 분야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그 그러함을 인정하는 것과 함께, 그 그러함이 시장에 잘 팔리지 않아 돈이 안 되어도, 심지어 그 형편없는 경제성조차 그 고유함을 구성하는 요소임을 묵인하고 그것의 그러함을 지켜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어떤 꽃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그 피어남만으로도 한 뼘의 땅이 기꺼이 허락되어 피는 내내 찬사 받듯이 말이다. 록과 같은, 지금은 돈 안 되는 몇몇 대중 예술이 바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아도르노는 <미학이론>에서 “예술은 단지 그 사회적 저항력을 통해서만 생명을 부지한다. 예술이 물화되지 않게 되면 상품이 될 뿐”이라고 했다. 이어서 “예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극히 간접적인 일, 즉 저항이다.”라고 했다. 뿐인가. “예술 작품이 어떤 사회적 기능을 지닌다고 단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작품의 무기능성이다.”라고 선언했다. 마치 미리 써 놓은 이 시대의 가난한 예술에게 보내는 찬사 같지 않은가?

가사와 선율, 외모와 의상, 정신과 삶까지 그 음악답게 만들어주었던, 그 아우라 가득했던 록은 이제 유물이 됐거나 저 시장 한 귀퉁이 소외 된 점포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 록뿐이겠나? 제품이 되지 못한 수많은 예술들이 그 기능 없음의 낙인을 쓴 채 소외를 겪고 있을 것이다. <아이언맨>이 AC/DC를 21세기에 다시 소환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록으로 안내해줄 영웅, 괴짜 아웃사이더, 슈니블리 같은 선생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스쿨 오브 록>에서 세상 둘도 없을 모범생들에게 록을 가르쳤던 그 선생님 말이다. 그 선생님은 그러셨다. “옛날에는 잘난 놈들에게 록큰롤로 저항할 수 있었다.”고. 록을 왜 좋아하냐고? 왜 하필 록을 들어야 하냐고? 그 선생님이 또 말씀하신다. “록에는 이유가 없다(Rock Get no reason).”고. 그러니 가끔은 귀에 때려 박히는 진짜 시원한 록을 들어보자. 돈이 안 되는 것들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나만의 저항정신을 드러내며 시장에 없는 음악을 끄집어내어 들어보자. 이젠 반항할 어른도 없는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뭐 어떤가, 아직 에어 기타와 헤드뱅잉을 해도 발목 관절, 목과 무릎에 무리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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