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이코노미톡뉴스] 며칠 전 후배 민우를 만났다. 과거 대형 사고를 당해, 당시 의사에게 서른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어 늘 건강을 체크하며 살아야 했던 놈이다.

이 놈을 처음 만난 건 모 대학 광고홍보학과 강사시절이었는데, 졸업 후 만났을 땐 문화기획을 한답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작은 전시회도 기획하고, 음악과 다른 비주얼 아트를 접목시킨, 내 기준으론 희한한 전시회도 기획했다. 녀석 부탁에 그 전시회의 관객과 아티스트와의 대화 시간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 한참 후에는 작은 통신 회사의 블로그 마케터로 일한다고 연락이 왔다. 잘 다니나 싶더니만 다시 연락이 와선 카페 창업하는 선배를 도와 마케팅 기획과 이미지 컨설팅을 한다고 했다. 그 몇 달 후 연락이 와서는 그게 엎어지는 바람에 잠시 수원의 고향집에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시 내려와 연락하길 자세히는 말 못할 밤일을 한다고 했다. 최근 그 놈 SNS에 와인을 들고 찍은 사진이 올라 왔기에 물어보니 현재는 와인 전문점에서 와인 판매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우리 세대 기준으로 보면 뭐하나 꾸준히 하는 게 없는 놈이다. 한 우물 파는 건 기대 할 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놈이 날 만나서 하는 말이, “선배, 전 취업난 없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 실시간으로 삽니다.”이런다. 인생엔 답이 없으니 그냥 제 내키는 대로 살면서 그 답 한번 써 보겠다는 심산인건가? 서른다섯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 온 놈과 헤어지니 이 영화가 생각났다.

'삶'이 바뀌는 여정


영화 <와일드>는 한 여성의 <PCT(Pacific Crest Trail)>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도보 여행은 일종의 트래킹인데 미국 서부 종주다. 간단히 설명하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서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서 끝난다. 그 사이에 캘리포니아, 오레곤, 워싱턴 주를 지나고,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캐스케이드 산맥을 타고 간다. 가장 높은 곳은 4천2백 미터가 넘고, 이 사이에 25개의 국유림과 7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여기에 모하비 사막이 초반에 버티고 있다.

이 험난한 여정에 왜 이십 대의 청춘이 도전했을까? 영화는 우리가 가진 의문에 답을 보여준다. 그러나 천천히, 느리고 고통스럽게, 한 여성이 발로 걸으며 그 답을 써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다시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할 딸이 되기 위해,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불쑥 덮쳐오는 과거의 기억들은 육체적 고통과 어우러져 밤의 휴식을 괴롭힌다. 하지만 주인공은 멈추지 않고 여정을 끝낸 후 인생의 새 여정을 시작한다. 배낭을 짊어온 시간 속에서 인생의 짐을 스스로 지는 힘을 얻게 됐고, 험난한 트레일 코스만큼 험난한 인생, 그 트레일 코스에서 내려야 했던 수 없는 의사 결정의 순간을 인생에 적용시켜,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삶을 시작한다.

패키지여행 같은 '삶'


애초에 여행은 사치품이었다. 괴테 같은 작가나 귀족들의 유럽 여행은 마차로 몇 달씩 걸렸다. 평민들은 군대나 부역에 징발 된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영리적 목적을 위한 여행사의 설립은 1841년, 토마스 쿡이 만든 회사가 시초라고 한다. 그러니 여행이 세계적인 상품이 된 건 이백년도 안 됐다는 말이다. 한국 최초의 여행사는 1945년에 생긴 조선여행사고 해외여행이 자율화 된 건 30년 정도 됐다. 그 덕에 아시아나 항공이 1988년에 생겼고 유명한 여행사인 M 여행사가 1989년에 생겼다. 그러니까 여행이 우리나라에서 산업으로 명함을 내민 게 길어야 70년 정도 된 거고, 복날의 삼계탕처럼 일상화 된 건 30년 밖에 안 된 것이다. 이 짧은 시간동안 여행업이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패키지여행 덕분이었다. 경험 없는 사람을 위해 여권 업무며, 공항 수속도 대신 해줬다. 여행지에선 깃발만 따라만 가면 되니 다들 안심하고 여행에 나설 수 있었다.

패키지여행은 모든 것이 규격화 되어 있고 정해져 있다. 미지의 장소와 길에서 마주할 선택의 불안도 없다. 패키지여행이 편한 건 이 때문이다. 가이드가 가라는 데로 가고, 쉬라는 데서 쉬고, 먹으라는 데서 먹고, 싸라는(?) 데서 싸고, 자라는데서 자면 된다. 신경 쓸게 없다. 청춘도, 인생도 이렇게 패키지여행처럼 살면 편하다. 남들 사는 데로 사는 패키지여행 같은 삶은 개인의 불안을 없앤다. 초등학교 때부터 옆집 친구, 옆에 짝과 같은 학원 다니고, 같은 과정을 거치면 부모 마음이 편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면 국영수 학원 다녀야 편하고, 남들 다가는 대학가고, 때 되면 취업하고, 때 되면 결혼하면 부모자식 다 편하다. 패키지여행과 동일한 편안함이다.

순례자의 삶과 성지


철학자 한병철은 <시간의 향기>에서 순례자의 길과 여행자의 길을 대비시킨다. 순례자의 여행은 고행이다. 오체투지로 가는 네팔의 순례자든, 산티아고의 길을 가든 순례자 앞에 놓인 길은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순례의 서사는 써진다. 순례의 끝에 다다른 성지는 그 서사의 마침표일 뿐이다. 그래서 순례는 스스로 하나의 경전을 써 가는 행위다. 성지를 향해 나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성자와 성인이 되 가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한 이는 순례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파올로 코엘료의 <순례자>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순례를 하고 나면 우린 다른 존재, 순례자가 된다.

그럼 여행자의 삶과 순례자의 삶은 뭐가 다를까? 순례자는 자신의 삶을 짊어지고 간다. 그 길은 그렇게 가야만 한다. <와일드>에 나오는 트래커처럼 입을 거, 먹을 거, 잘 거 다 짊어지고 간다. 이 순례의 길은 기도의 길이고, 회개의 길이고 반성의 길이다. 오체투지로 가든, 다리로 꾸역꾸역 걸어가든 그 길은 그런 길이다. 그렇다. <와일드>의 여정은 삶을 짊어진 여정이다. 과거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가면서 길을 스스로 만들거나 선택하며 가는 여정이다. 그러니 순례자처럼 산다는 건 자기 삶을 짊어지고 사는 삶이다. 끝없이 반성하며 사는 삶이고, 그럼으로써 과거를 짊어지되 동시에 그 과거와 결별해가며 사는 삶이다. 또, 순례자처럼 산다는 건, 성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깨닫는 삶이 아니라 그 여정 속에서, 그 길 위에서 깨닫는 삶이다. 오체투지처럼 여정을 온 몸으로 겪어내며 사는 삶이다. <와일드>의 여정처럼 순례는 사적인 결단의 연속이다. 산티아고의 길을 가든 티벳의 라싸에 가는 길이든, 성산인 카일라스 산으로 가든. 평지가 됐든, 해발 6천 미터 이상이 됐든 모든 길은 본인이 선택한다. 온 몸으로 세상을 느끼며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미 개인의 성지화가 시작 된다. 길을 나서는 순간 이미 그 딛고 서 있는 곳이, 몸으로 닿은 그곳이 성지가 되는 것이다. 성지는 순례라는 서사의 마지막 장이 될 뿐이다.

서른다섯, 민우의 여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난 예측할 수 없다. 그 끝에 어떤 성지가 기다릴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남은 삶을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며 앞으로 나갈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남과 다른 조건이어서, 그래서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지만 남 탓, 나라 탓, 세상 탓, 사회 탓 안 하며 앞으로 나갈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과거와 결별하고 오늘을 반성하며 내일의 희망을 믿고 묵묵히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갈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자>의 작가의 말에 남긴, “오늘도 나는 미래를 향해 걷고 있다.”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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