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휴 경제기자. (사진=이톡뉴스)
배병휴 경제기자. (사진=이톡뉴스)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노태우 정부의 ‘토지 공개념’ 논란과 ‘토지 초과이득세’ 입법 과정 때 겁 없이 덤비다가 말썽이 빚어졌다. ‘토초세’법은 땅값이 전국 평균보다 너무 높게 오른 지역의 ‘초과이득’을 미리 세금으로 징수하겠다는 법안이다. 이는 토지 공개념에 바탕을 두고 땅값을 물리적으로 진압하겠다는 일종의 ‘융단폭격’ 성격이었다.

이에 관해 경제이론가들도 말조심했지만 경제 기자로서 건설업계 동향을 듣고 용감하게 지지 선언하고 나섰다. 주택건설업계 등 에서는 “땅값이나 투기세력과의 전쟁 선포 아니고는 경제안정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 호 건설과 함께 ‘토초세’ 입법에 운명을 걸고 있었다.

그렇지만 토초세 법안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투기꾼들의 요동으로 땅값이 크게 올라 ‘초과이득’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실제 주머니 속에 입금되지 않은 ‘미실현 소득’이라는 점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론에 비춰보더라도 “미실현 소득에 어찌 세금을 매길 수 있느냐”는 반론이 강경했다. 그런데도 방송프로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토론회에도 거침없이 참가하여 토지 공개념과 토지 초과이득 징수를 강조했으니 겁 없이 덤빈 ‘경상도 사투리’의 행진 격이었다.

KBS 2TV의 아침 ‘전국은 지금’ 방송을 끝내고 퇴계로 신문사로 돌아오면 7시 40~50분, 편집국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험한 욕설이 쏟아진다.
“너도 명색이 경제 기자라면서 주머니 속에 들어오지도 않은 ‘상상의 미실현 소득’에 과세하는 것이 옳다니 제정신이냐”, “꼭 마른 명태처럼 비쩍 마른 몰골에 그나마 특정 지역 사투리(경상도)로 아침 밥상머리에 대고 ‘토지 초과이득세’라고 나팔을 불어대니 너 저주받아 지옥에 안 갈성싶으냐”고 정신없이 악담을 쏟아낸다.

이와 별도로 퇴근시각에 맞춰 신촌 연대 앞 먹자골목 카페에 이북 출신 땅 부자가 기다렸다가 “내 땅 3분의 1 내놓을 테니 토초세 입법 저지 운동 벌여줄 테냐”는 폭탄 제안도 받아야 했다. 이북 고향 땅에 선산을 두고 38선 넘어와 개처럼 열심히 돈 벌어 선산 장만하고 공장 터 확보해 놨는데 “말도 안 되는 토초세법 만들어 뺏어가면 김일성 독재와 다를 것이 뭐냐”고 분노했다.

이런저런 말썽에 지쳐 더 이상 방송하기가 싫어 그만 출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구 출신 김 아무개 PD가 “고만 속 풀고 그냥 출연해 주이소”라고 거듭 요청하여 그 뒤에도 계속 출연했다.

토초세 지역별 예정 통지 현황표.(1991.8.5). (사진=연합뉴스)
토초세 지역별 예정 통지 현황표.(1991.8.5). (사진=연합뉴스)

그 뒤 토초세법은 진통을 겪고도 끝내 입법되어 시행됐다. 지자체에서는 토초세로 가만히 앉아 세입이 부쩍 늘어나서 좋다고들 했다. 주택건설 업체들도 환영했다. 그러나 땅 가진 사람들은 갈수록 분노와 악담으로 정권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끝내 헌법재판소가 토초세법의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려 짧은 수명으로 소멸하고 말았다. 역시 미실현 소득에 대한 사전 과세는 ‘과잉입법’으로 이를 적극 지지했던 경제 기자의 소신도 과잉이었음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다만 ‘토초세 입법’을 지지했던 경제 기자로서 ‘경상도 사투리’의 무죄만은 강력히 주장하게 됐다. 분명히 나는 경제 기자 40여 년간 땅 한 평, 주식 한 장 투기용 소유기록이 없다. 아파트 하나 장만 못 하고 70년대식 단독주택 하나가 내 여든 평생 재산이다.

경상도 산촌 태생, 사투리 인생으로 토지 공개념을 신봉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 토종(土種)으로 고향 사투리마저 토종의 역사문화 유산쯤으로 판단한다. 저마다 고향 사투리도 지역별 자연풍토에서 우러나온 삶의 단면이다. 요즘이야 전국이 동시 생활권이지만 옛날에야 교통, 소통이 막힌 고을마다 토종 삶 아닌가. 이때부터 생겨난 고향 사투리는 비육우, 씨암탉 등 토종과 똑같은 ‘신토불이’로 보존가치가 있는 자산이 아니냐는 주장으로 ‘경상 사투리’의 무죄를 선언한 것이다. (회고록 '배병휴 경제기자 일생' 발췌)

((1994년,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토지초과이득세법(토초세)이 헌법상 조세법률주의와 개인의 재산권 보호 등 경제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