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수영을 다시하고 한 달쯤 지나니 살이 빠졌다. 3,4 킬로그램 정도 빠져서 오랜만에 60킬로그램 대의 몸무게가 됐다. 앞선 칼럼에서 말했듯이 제법 많이 걷고 틈틈이 근력 운동을 해서 나름 몸 관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줄어든 몸무게가 내게 준 의미는 제법 크다.

타성과 각성


우린 자신의 몸과 마음과 타협한다. 힘들면 쉬고 고통스러우면 멈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으면 페이스를 늦춘다. 나 또한 그랬다. 적당한 운동만으로도 몸매와 몸무게가 유지되니 더 열심히 운동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 몸이 타성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몸이 괴롭다. 심장이 아우성을 친다. 강사에겐 그 소리가 들릴 리 없으니 강사는 "한 세트 남았어요. 출발~"하고 무심히 말한다. 잘 생긴 강사가 웃으며 말하면 어머니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무심결에 출발하고 만다.

물놀이 즐기는 함양 어르신들(2015). (사진=연합뉴스)
물놀이 즐기는 함양 어르신들(2015). (사진=연합뉴스)

십년 전 수영에 한참 미쳐 있을 때, 강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중년의 남자 회원 이 "하이고, 죽겠다."하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자 강사가 답했다. "이 센터 연 이래, 여기서 수영하다 죽은 분 없어요. 걱정 마세요. 출발~". 나도 요즘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되 뇌이며 수영을 하고 있다. 이 정도 숨 참는다고 죽지 않아, 이정도로 대쉬한다고 어깨 안 빠져,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한다.

십여 년 전 수영을 배우기 전까지, 물놀이를 해 본적이 없다. 대충이라도 물에 떠서 노는 법을 몰랐다. 잘해야 튜브타고 노는 거였는데, 그나마도 십 년에 한번 할까 말까였다. 그야말로 물과 초면인 상태로 수영장에 등록했다. 앉아서 발차기-오른쪽 호흡-스트로크-자유영-배영-접영-평영 순으로 착실히 배웠다. 센터를 운영하는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잘 생기고 몸매 좋은 강사들은 자기들이 배운 대로, 교과서대로 가르쳤다. 배울 땐 고되지만 이렇게 배워놓으면 힘이 빠졌을 때 오히려 영법이 유지되면서 수영이 더 잘 된다. 아마 다른 스포츠도 그렇지 않을까? 기본기가 탄탄하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동작이 나온다.

기초와 기본기, 그리고 능숙함


진지한 스포츠이자 운동으로 수영을 한다면 다른 모든 종목처럼 기초와 기본이 중요하다. 물론 엉망인 폼과 호흡법으로도 앞으로 갈 수는 있다. 하지만 멀리 못 가 지친다. 운동 효과도 떨어지고 실력도 나아지지 않는다. 제대로 배우면 제대로 한다. 마스터반 정도 되면 강사가 별 말 안하는 이유다. 세트 시켜 놓고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 나쁜 버릇이 있는 사람만 불러서 지적한다.

수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 이런 기초를 쌓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우리 반 1번 주자 아저씨와 얼마 전 이런 대화를 했다. 아저씨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수영 폼이 좋으시네요. 그전에 여기서 수영을 배우셨죠?”

“네. 한 십여 년 전에.”

"역시... 그럼 장거리가 더 편하시겠네... 전 수영을 오래했는데 여기 와서 강사들에게 영법 지적 받고 이제 좀 고쳤어요."

난 이게 무슨 말이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다. 주말 저녁, 아내에게 이 얘기를 해준 뒤에야 이해했다. “어, 그런 사람 의외로 많다. 거기처럼 레인마다 강사가 붙어서 발끝에서 손끝까지 폼 다 잡아주는 수영장 별로 없다더라. 그래서 오래 해도 폼이 엉망인 사람 많은 거지. 우리 직원 중에도 그런 사람 있더라."

8월초, 실제로 그런 어른이 수영장에 왔다. 자신이 어느 반에 있어야하는지도 몰랐다. 이 레인,저 레인 서성이자 강사가 다가왔다. 몇 마디 나누더니 <중급반> 레인으로 보냈다. 우리가 쉴 때 그쪽 레인을 잠시 지켜봤다. 자유형을 막 시작했다. 영감님은 무호흡으로 허겁지겁 팔을 몇 번 휘저어 몇 미터 가신 후 중간에 우뚝 서버렸다. 중간에 우뚝 서는 것은 수영장 비매너 중 하나다. 뒤에 오던 사람도 서버렸다. 강사가 그 어르신을 다시 불러 기초반으로 보냈다.

노련미와 감을 만드는 기초


요즘 3분짜리 홍보 영상 시나리오를 많이 쓴다. 3분 안팎의 홍보영상이면 몇 글자의 멘트를 할 수 있을까? 계산은 의외로 간단하다. 20초 라디오 광고의 최적의 글자 수는 110글자다. 물론 카피라이터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다만 난 어지간하면 이 숫자를 안 넘긴다. 1분은 60초니까, 1분이면 330글자를 칠 수 있다. 3분이면 당연히 990글자. 그러니까 3분짜리 홍보 영상의 멘트 분량으로는 대략 천 자 정도가 적절하다. 물론 영상이 더 많은 일을 하게 하려면 글자 수는 이보다 적은 것이 좋다. 최근, 이 정도면 3분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길이로 시나리오를 다 써 놓고, 궁금해서 글자 수 통계를 봤다. 907자였다. 나중에 추가해 달라는 정보를 추가한 수정안은 970자. 감으로 얼추 비슷하게 썼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감은 거저 생기는 건 아니다. 요즘 업계 후배들과 만나거나 얘기할 일이 종종 있다. 또 최근 우리가 하기엔 단가나 일의 성격 면에서 좀 맞지 않는 일이 있어서 후배들에게 넘겨주려고 감독과 내가 아는 후배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 결과, 우리가 내린 결론은 요즘 이 지역의 동종 업계 후배들이 영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자기 맘대로 수영을 하면 운동이 될 수도 없고, 제 멋대로 수영을 하면 실력이 나아지지도 않는다. 거친 바다 수영도 실내 수영장에서의 기본기에서 출발한다. 수영을 운동으로서 오래하고 싶다면 수영장 레인 위에 걸타 앉아 발차기만 하는 수모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심지어 수영장 벽에 두 팔을 뻗어 올려 댄 후 선 채로 팔을 돌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스트로크와 호흡법의 리듬도 익혀야 한다. 물 위에서 날아다니고, 물속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며 그 물 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쪽 팔리지만 어쩔 수 없다. 나 또한 그랬다. 대학 땐 농구와 축구로 이름깨나 날렸고, 하프코스를 수십 번 뛴 마라토너이자, 스포츠 클라이밍을 5,6년이나 했던 스포츠 마니아였지만 이러한 수영장 기초반의 수모를 피할 순 없었다.

기초반의 시간


요즘 후배들, 최소한 우리의 후배들에겐 저 기초반의 시간, 그 수모의 시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찌어찌 익힌 폼으로 버티며 왔지만 더 고차원의 길, 더 먼 거리를 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후배들만 그럴까? 의외로 부산, 울산에서 이 업을 수십 년 한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기초반에 등록할까? 수영을 할 줄 알지만 강사에 의해 기초반으로 보내진 영감님처럼 기초부터 다잡을 각오를 할 수 있을까?

멀리 가기 위해선 기초반의 시간이 필요하다. 앞서 가거나 성공을 향한 여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여정에 대해 말할 자격이 내겐 없다. 다만 가진 재주에 기대어 한 업을 이십 년 한 사람으로, 그리고 앞으로 십 년은 이 좋아하는 일, 카피라이터로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 여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는 업의 여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예전 선배들은 종종 “요즘 학교에선 도대체 뭘 가르치는 거냐.”하고 핀잔을 주곤 했다. 이런 소리를 요즘 동년배 동료들과 하곤 한다. 모든 스포츠에 기본기를 닦는 초보자의 시간이 필요하듯 하나의 업도 그러하다. 설령 그 시간 없이 업에 뛰어들어 어찌어찌 몇 년을 밥을 먹고 살았다 하더라도 그 기본과 기초가 없다는 불안이 떠나지 않았 것이다. 놀이로서의 수영은 할 줄 알아서 불쑥 수영장에 등록해서 스포츠로서의 수영을 시작하며 기초반의 시간을 받아들인 그 중년의 사내처럼,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선 기초반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더 멀리, 더 오래, 더 잘, 더 멋있게 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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