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는 게 좋을 때는 지났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당연한 얘기지만, 쉰이 넘게 사는 건 처음이라 종종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들 때가 있다. 백세 시대라고 하면 난 겨우 반환점을 돈 셈이니 살아온 만큼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일종의 막연한 감정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나 싶다. 이렇게 심난한 마음으로 12월을 맞이했을 때, 아내가 공연 하나를 보자며 12월 29, 30, 31일, 3일간 이어지는 재즈 공연 시리즈의 온라인 팸플릿을 보여줬다. 맘에 드는 공연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팸플릿을 보자마자 고민할 것 없이 12월 31일의 라인업으로 결정했다.

공연 포스터.
공연 포스터.

 

색소폰 연주자인 이정식과 그의 밴드, 그리고 보컬엔 윤복희 선생님이었다. 결정을 한 뒤, 이정식을 모르는 아내에게 이런 내용의 카톡을 남겼다. “이 이정식이 내가 아는 그 이정식이면 이 공연은 꼭 봐야 한다.”고. 그렇게 공연을 결정한 후, 한 생각이 스쳤다. ‘보자, 두 양반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윤복희 선생님이 1946년생, 내 어머니보다도 연세가 더 많으셨다. 이정식 연주자는 1961년생으로 환갑을 훌쩍 넘었다. 나보다 열 살 가량 많은 것이었다. 나이를 알고 나니 다른 생각이 뒤를 이었다. ‘두 분 다, 체력이 괜찮으시려나.’

공연장소인 영화의 전당 안에 있는 하늘 극장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살짝 놀랐다. 필자가 상대적으로 어린(?)관객이었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중년의 관객들에게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당연히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윤복희 선생님은 이 멋진 공연과 함께 언젠간 선생님의 나이에 다다를 관객들에게 잘 나이 드는 법, 멋있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한 교훈도 몇 가지 남기셨다.

2011년 4월 21일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윤복희가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0주년 콘서트 '60년만의 첫나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1년 4월 21일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윤복희가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0주년 콘서트 '60년만의 첫나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老엔터테이너의 세 가지 교훈


첫 번째 교훈은 나이에 대한 사회와 세상의 고정관념 정도는 사뿐히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날, 선생님은 이 사회가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통념과 상식을 가뿐히 뛰어넘으셨다. 윤복희 선생님의 첫 의상은 흰 색 블라우스에 흰 색 미니스커트, 여기에 하이힐을 신으셨다. 두 번째 의상은 색만 검은 색으로 바뀌었지 디자인과 구성은 유사했다. 아무리 미니스커트의 원조 여신이라 하더라도 칠순이 넘어서 미니스커트라니.

그러나 칠순이 넘어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내가 더 놀랐던 건 그 차림새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뭔가 과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아 보이거나 모처럼 큰마음 먹고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팔순을 향해 가는 아티스트한테 해도 되는 소리인지 솔직히 지금도 판단이 안 서지만 윤복희 선생님은 정말 날씬하셨다. 아마 그 극장에 있는 모든 여성 중에서 가장 날씬하고 건강해 보이는 각선미 아니었을까?

사실 날씬한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다 미니스커트를 자신만만하게 입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하는 우리네 특성상 어느 이상 나이를 먹으면 옷장에서 미니스커트가 사라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오르셨다. 다른 계절도 아니고 겨울에 말이다. 마음과 몸이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두려움 없이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함께 빛나면 더 밝게 빛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중간에 옷을 갈아입으러 잠시 무대 뒤로 퇴장하시기 전, 이정식 연주자와 그의 밴드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밴드가 그냥 반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최고의 재즈 밴드라고 소개하시면서, 내 공연에 함께 해달라고 본인께서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졌다며 농담을 섞어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게 이정식 밴드를 추켜세워 소개하셨다.

 

1990년대 재즈에 잠시 심취했었던 필자에게 이정식이라는 세 글자는 따로 소개할 필요 없는 소프라노 색소폰, 재즈 색소폰의 대명사인 연주자다. 하지만 나와 함께 간 아내나 처남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어 봤다고 했다. 아마 관객들 중에서도 이정식이라는 연주자가 낯선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관객들에게 본인보다 나이 어린 연주자와 그의 밴드를 한껏 추켜올려 소개하는 것은 아무리 예의상 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상 깊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함께 하는 연주자와 밴드의 수준을 높여 소개하는 것이 선생님의 가치를 훨씬 높이는 것이라는 깨달았다. 이 정도 수준의 밴드여야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담긴 메시지로 해석 됐다는 것이다. 파트너를 높이면 그 파트너의 파트너인 나도 높여진다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사실을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셨던 것이다.

세 번째 교훈은 지금 가는 길을 두려워 말고 후회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윤복희 선생님은 자신을 뮤지컬 가수로 소개하셨다. 심지어 그 덕분에 히트곡이 별로 없다는 농담까지 하셨다. 이어 본인이 출연한 작품 몇 편을 소개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빠담 빠담 빠담>, <피터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등을 말이다. 선생님은 이 작품들을 십년 이상 장기 공연 하셨다. 작품의 면모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윤복희 선생님은 한국 뮤지컬계의 대모이자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생각해보면 쉬운 길이 아니다. 그 길을 개척자가 되어 갔다. 조금 길을 낸 뒤 다른 길, 좀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중 가수로 히트 곡을 연달아, 꾸준히 내면서 낮 무대 밤무대 할 것 없이 몇 번 오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인생 대부분을 뮤지컬에 받쳤다. 그런 선생님의 무대엔 회한도 아쉬움도 없어 보였다. 뮤지컬계 대모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장인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1996년도의 대표 재즈 연주가 테너 색소폰의 이정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1996년도의 대표 재즈 연주가 테너 색소폰의 이정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위로를 가슴에 품은 밤


공연을 보고 나오니 해가 졌다. 뭔가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야, 겨우 오십 넘은 놈이 뭔 걱정이 그리 많으냐? 하고 싶은 일, 하던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아.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오랫동안 현역으로 살아. 열정만 잃지 않으면 그럴 수 있어. 그러니 어깨 펴.”하는 덕담을 들은 기분이었다. 함께 온 처남과 송년회를 핑계로 한 잔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니 사람이 가득 했다. 이 날, 광안리에선 해넘이 드론 쇼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날 드론 쇼는 취소됐다. 2021년 여름, 광안리에서 드론 쇼가 상설로 펼쳐진 이후 통신 장애로 드론이 뜨지 못해 공연이 취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주최 측에서도 8만 명의 인파가 몰릴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또, 당연히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 통신 장애가 일어날 줄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첨단 기술의 힘으로 몇 년 간 별 사고 없이 제 시간에 어김없이 진행되어 왔던 드론 쇼도 이런데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면 두말 할 것 있겠나?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사십 대를 지나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막 지나 오십 대에 접어들었다. 불혹도, 지천명도 나에겐 해당 사항 없다고 절실히 느끼며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이제 생각이 원숙해져서 무슨 말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이순(耳順)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여정의 초입에서 윤복희 선생님의 공연을 통해 잘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두려움 없이 나이 드는 것에 대해 한 수 배웠다.

사족 한 문장을 덧붙이자면, 신년의 살풀이 삼아, 1월 둘째 주 토요일, 부산국립국악원에서 발탈과 줄타기 공연을 봤다. 발탈은 국가무형문화재로 한쪽 발에 탈을 씌워 진행하는 공연이다. 이번 부산 공연은 발탈의 예능보유자이신 박정임 선생님이 직접 하셨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인사에서, 발탈을 한 지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부산을 찾았는데 정말 뜨겁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셨다. 선생님은 1939년생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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