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왜 취미가 독서냐고 물어보면 TV가 재미없어서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그래도 이렇게 책에 손이 가기 전, 하루에 한두 번 정도 채널을 열심히 돌리다보면, 방송의 흐름이랄지, 어떤 유행이 감지될 때가 있다. 최근에 느껴진 것은 덩치 큰 사람들이 나와 많이 먹는 걸 보여주는 방송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꾸준하게 많이 먹어서 살이 점점 찌는 데도 그것을 재미있어하거나 희화화하고 심지어 긍정하는 방송도 제법 되고 말이다.

덩치들의 먹는 방송


SBS의 <덩치 서바이벌 먹찌빠>는 아예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덩치 열 명이 먹고 게임하는 것이 전부인 프로그램이다. 또 MBC의 <전지적 참견 시점>에는 이영자씨도 날씬해 보이게 만드는 개그우먼 이국주씨와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풍자씨가 자주 출연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얼마 전엔 이들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개그우먼 신기루 씨까지 <구라걸즈>라는 그룹으로 묶어 홍콩 여행도 보내줬다. 이 여행에서 이들이 주로 한 일은 먹는 거(물론 이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다)였는데, 선상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금액이 60만 원 정도 나왔고, 홍콩에 1박 2일 머무는 동안 식비로만 100만원을 썼다.

상대적으로 날씬한 멤버들로 교체되기 전까지,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김준현, 김민경, 유민상, 문세윤 같은 큰 덩치의 코미디언들이 출연했으며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인 <토요일은 밥이 좋아>에선 유튜브 먹방 크리에이터로 유명한 히밥과 대식가로 소문난 전직 농구 선수인 현주엽씨가 출연하여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어떤 형태의 외모와 몸이든, 어떤 취향이든 화제가 될 성 싶으면 뭐든 콘텐츠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이 업계의 생리라고 치부하고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몸과 외모가 어떠하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자기 몸 긍정주의와 자존감 찾기 트렌드가 반영 된 결과라고 봐야할까? 이 현상의 이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기 전에 영화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

영화 "I feel pretty(2018)"
영화 "I feel pretty(2018)"

 

내가 달라 보이는 기분 좋은 착각


여기, 누가 봐도 뚱뚱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와 신체로 인해 여러 불이익을 당하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소원을 들어준다는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며 예뻐지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 그 며칠 후, 고정식 자전거로 하는 운동인 스피닝 클래스에서 운동을 하다 안장에서 떨어지게 되고, 그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은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날씬하고 예쁜 사람으로 보인다. 그녀는 소원이 이뤄졌다고 굳게 믿는다.

그 후 그녀는 그렇게 “보이는” 자신을 진짜 자신으로 알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게 되고 그 덕분에 그녀가 일하던 화장품 회사에서도 승진과 성과를 반복해서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자 친구도 사귀게 된다. 그러다 얼마 후, 출장지의 호텔 샤워 부스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힌 후 본래의 자신이 보였고, 그녀는 마법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잠시 좌절에 빠졌던 자신이 예뻐졌다고 착각했던 시기와 현재의 자신이 달라진 게 없음을 깨닫고, 삶을 바꾸는 건 외모나 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임을 웅변한다.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이 영화는 자기 긍정과 자존감을 만드는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물론, 사춘기를 코앞에 둔 딸을 둔 필자의 입장에선 Dove의 Real Beauty 캠페인의 메시지와 유사한, 이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 뚱뚱하고 못 생긴 애를 따돌리고 놀리는 것은 이제 뉴스로 다뤄지기엔 너무 흔한 일이 됐고, 실재로 딸과 딸의 친구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소녀들이 얼마나 일찍 자신의 외모와 몸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지도 알게 됐다. 이런 이유로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라는 메시지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메시지에 대한 공감과 동의와 함께 다른 시선도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과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는 비만인 신체로 사는 자신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을 혼동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괜찮지 않은 괜찮음


객관적 자기 성찰과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은 다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 뒤에 발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난 괜찮아.”라고 스스로에 말하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본인이 봐도 괜찮지 않고 다른 이가 봐도 괜찮지 않다면 괜찮아지도록 뭔가 해야 하지 그 “괜찮지 않은 자신”을 그대로 놔두고, 심지어 “#괜찮다”는 해시태그와 그런 표정을 지은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영화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자기 긍정과 자존감은 절대적으로 위험하다. 환각이자 환상,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실재로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자 주인공이 환각 속에 얻은 자신감 또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획득한 것이 아니고, 환상 속의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적” 자신감이다. 그렇다고 그 환각이 깨어진 뒤에 얻는 “난 이대로도 아름다워.”유의 자존감은 진짜일까?

나와 타자의 시선이 존재하고 나에 객관적 상태가 엄연히 존재하는 그것은 그대로 두고 마음만 바꿔 먹는다고 앞으로 인생이 잘 풀리는 걸까? 건강에도, 사회생활에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오히려, 차라리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처럼 나에 대한 타인의 해석에 오류가 있는 것이 낫다. 최소한 자기 자신은 자신에 대해, 요즘 애들 말을 빌려 표현하면 “멘탈을 챙기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전혀 괜찮게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긍정하는 건 일종의 오류다.

Bright-Sided: How Positive Thinking Is Undermining America (2010년)
Bright-Sided: How Positive Thinking Is Undermining America (2010년)

 

바바라 에런라이크는 그의 저서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적 사고에 담긴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하나는 “지금 이대로 아주 좋다는, 긍정적인 생각 그 자체를 뜻”하는데, 이건 일종의 낙천주의로 이런 정신 상태는 “인지 상태이자 의식적인 기대이므로 누구든 수련을 통해 개발할 수 있다.”, 결국 긍정적 사고에 담긴 두 번째 의미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과 그 노력 끝에 얻어진 생각으로 나는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부정적 물리적 상황이 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생각의 연습”만으로는 단 1그램의 살도 뺄 수 없다. 결국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불안이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행동과 실천 없이 변화를 꿈꾸기 위한 이러한 긍정적 사고를 위한 훈련에는 결국 “고의적인 자기기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속담에 "냄새 나는 것엔 뚜껑을 덮어 놓으라"는 말이 있다. 구린 일은 덮어두라는 말이다. 불편하게 하는 객관적 사실을 모른 척하라는 말이다. 신체는 인생의 캐리어다. 일상을 담고 가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깨지고 망가지면 그 안에 담긴 인생 또한 온전할 리 없다. 안에 담긴 인생을 위해 그 인생을 담고 있는 그릇인 신체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진정한 도움을 주는 진짜 긍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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