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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한국콜마는 윤동한 회장과 한국콜마여주아카데미 임직원들이 지난 25일 경기도 여주시 단현동에 위치한 에드워드 무어 장군 추모전적비를 방문해 추모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무어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전쟁 영웅이다. 한국전 발발로 한국을 찾은 그는 1951년 2월 양평 지평리전투 후 실시된 '킬러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직접 헬리콥터에 타서 지휘에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헬리콥터가 한강변에 추락하며 전사했다.무어 장군은 끝까지 부하들의 구출을 걱정하며 숨을 거둔 살신성인
사회
김윤수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2023.06.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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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일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박사·(前)한전KDN(주)상임감사·(前)주 프랑스국방무관)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이에 한국 국방부는 1957년 7월 15일 지평리 전투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 전적비를 세웠으며, 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공산군이 평화롭던 이 강산을 피로써 물들이고 조국의 가쁜 숨이 경각을 다툴 때 16개국 유엔군이 인류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정든 고국산천을 등지고 수륙만리 이역의 땅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1951년 2월 13일부
논객 칼럼
김무일 파리1대학국제정치학박사
2020.02.2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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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일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박사·(前)한전KDN(주)상임감사·(前)주 프랑스국방무관)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중공군 2월 공세 당시 미 제2사단 제23연대와 이 연대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의 통합 5,600여명이 지평리에서 중공군 제39군 예하 3개 사단 3만 명의 집중공격을 막아낸 방어전투이다.이 전투에서 미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는 좌우 인접부대가 중공군에게 밀려 철수하게 됨에 따라 중공군 제39군의 사면포위 하에 놓이게 됐으나 중부전선 교통 요충지인 지평리를 고수
논객 칼럼
김무일 파리1대학국제정치학박사
2020.02.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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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일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박사·(前)한전KDN(주)상임감사·(前)주 프랑스국방무관)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몽끌라르 장군의 본명은 마그랭 베르느레(Magrin Vernerey)이며, 헝가리 이민출신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 출생하였다.그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생시르(Saint-Cyr)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보병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세계 제 1, 2차 대전의 각종 전투에 참전해서 20여개의 각종 무공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었다.제1차 세계대전 당시 1914년 8월 5일 장군은
논객 칼럼
김무일 파리1대학국제정치학박사
2020.02.1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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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일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박사·(前)한전KDN(주)상임감사·(前)주 프랑스국방무관)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할 당시 프랑스는 제4공화국으로 내각이 빈번하게 교체되면서 정국이 불안정한 시기였다.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전후 복구 작업, NATO가입, 인도차이나전쟁 등 국내․외사정으로 인해 정상적인 군대를 파병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육군본부는 12명의 고위급 장교들을 시찰단으로 파견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유엔군사령부는
논객 칼럼
김무일 파리1대학국제정치학박사
2020.02.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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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진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경기도 양평 지평리에는 '지평리 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다. 이곳 주민들은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에게 '지평리 전투'와 관련 내용은 매우 희석된 분위기다.지평리 전투는 한국인에게 얼마나 알려 있을까? 서울 시청 앞, 강남역 등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필자가 "혹시 6.25 한국 전쟁 당시 발생한 지평리 정투에 대해 아시나요?" 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반면, 경기도 양평을 방문해 현지 주민에게 문의하면 거의 모두 "지평리 전투는 UN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대승했다."고 말한다.1951년 2월 경기도 지평리에는 매우 치열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중공군과 미군과 프랑스군의 UN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사에
사회
최노진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2018.06.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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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유수호 천사(Monclar) 몽끌라르 장군과 지평리전투 [김무일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박사·(前)한전KDN(주)상임감사·(前)주 프랑스국방무관)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이톡뉴스)] 불세출의 전쟁영웅 몽끌라르 장군은? 몽끌라르 장군의 본명은 마그랭 베르느레이(Magrin Vernerey)며, 헝가리 이민출신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 출생하였다. 그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생시르(Saint-Cyr)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보병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세계 제 1, 2차 대전의 각종 전투에 참전해서 20여개의 각종 무공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1914년 8월
인터뷰
김무일 전 주프랑스 국방무관
2018.02.0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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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참전용사 ‘쟝 르우’ 6·25 격전지에 잠들다 철원군 화살머리 고지에 유해 안장 지난 11월 2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5사단 내 프랑스 참전비에서 열린 6.25 한국전쟁 프랑스 참전용사 고 쟝 르우(Jean le Hou)씨의 안장식이 거행되었다. 지난 1951년 12월 19살의 나이에 유엔군 프랑스 대대 소속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쟝 르우씨는 2007년 한국 재방한 행사당시에 참전했던 ‘화살머리’ 고지 전투 장소를 둘러보고 ‘죽으면 유해를 이곳에 묻어 달라’는 뜻을 밝혔다. 그는 작년 12월 30일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고 유엔 프랑스대대의 한국전쟁 참전협회는 보훈처, 국방부 등과 협의를 거쳐 그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해 안장하기
인터뷰
김무일 전 주프랑스 국방무관
2017.12.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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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지도· 감독 전쟁중공군의 한국전쟁朴實 전의원, 중국측 공문서 분석해설모택동 펑더화이 간 38선 돌파 이견 중공군의 6.25 참전을 중국 측 공문서 등을 통해 분석한 ‘중공군의 한국전쟁’은 언론인 박실(朴實) 전 3선의원이 지난 2013년 7월 발간했다.(청미디어) 저자는 ‘이승만 박사와 미국’, ‘박정희와 미국 대사관’ 등의 저서를 통해 한·미간의 외교비사에 관한 전문적인 분석력을 제시한 바 있다.김일성, 40여차례 스탈린에게 간청‘중공군의 한국전쟁’에 따르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남침계획을 승인 받고자 직·간접으로 40여 차례나 졸랐다. 1949년 3월, 3번째 모스크바 비밀방문에서 김일성은 남조선 해방의 적기가 도래했다고 강조했지만 스탈린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인터뷰
경제풍월 기자
2015.07.1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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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호] 이길 수 있는 사격훈련 글 / 徐慶錫 (서경석 예비역 육군중장·국방평론가) 병사가 살아남는 교육 사격장에서 사격하는 모습을 보면 표적을 맞추고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한다. 사격장에서는 표적을 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쏜다는 것을 가르치고, 적을 향해 총을 쏠 때 그곳에서 무엇이 벌어지는지를 함께 가르쳐야한다.세계 제2차대전시 길버트(Gilbert)제도의 메이킨(Makin)섬 전투에서 미군 1개 대대는 섬에 상륙 후 3일 만에 첫 야간 전투를 하였다. 아침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전방에 배치되어 있던 부대는 총검과 일본도의 공격을 받았다. 미군 진지 앞에는 일본군 시체가 흩어져 있었고, 후방에 배치된 미군 포의 반 정도는 적의 돌
논객 칼럼
배만섭
2009.12.01 10:54